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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맹인안내견과 백두산 등정
입력2000-04-28 00:00:00
수정
2000.04.28 00:00:00
『시각 장애인의 눈과 다름없는 맹인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세계 맹인견의 날을 하루 앞둔 25일 시각장애인 3명이 맹인안내견(래브라도 리트리버종)의 도움을 받아 국내 최초로 민족의 성지인 백두산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이날 오전6시30분 백두산 길목인 중국 연변자치주 안도현 이도진에 도착한 장애인들은 왕복 20㎞에 이르는 백두산 등정을 시작했다.
선두에는 맹인견「창공」과 함께 김기철(金幾哲·27·대구대 영어교육과 4학년)씨가 섰다. 이어 맹인견 「재미」와 김대운(金大運·27·대구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씨, 맹인견 「토담」과 노영관(盧永官·23·대구대 경제 금융보험학과 2학년)씨가 뒤를 따랐다. 삼성맹인견학교 관계자 등 20여명도 함께 등정을 시작했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날씨가 변한다는 백두산. 산을 오르는 길목은 1㎙의 눈이 쌓여 무릎까지 빠졌다. 게다가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눈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강풍과 함께 안개가 자욱했다.
앞을 볼 수 없는 장애인들에겐 벅찬 코스였다. 하지만 안내견들은 주인을 안전한 길로 이끌었다. 깊은 눈구덩이가 있으면 멈춰서 주인이 피해 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오전11시 등정을 시작한 지 5시간. 백두산 천문봉를 불과 300여㎙ 앞둔 2,400㎙고지. 갑자기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의 안개와 사람의 몸이 날아갈 정도의 강풍이 몰아쳤다.
주인을 이끌던 안내견도 주인의 신변에 위험을 느꼈는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주인도 안내견의 고집을 이기지 못해 어쩔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주인의 명령에 어긋나더라도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지적(知的) 불복종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비록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토담의 안내를 받아 험난한 산을 오른 노영관씨는 토담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며 고마워했다.
김기철씨도 주인을 정상으로 데려가지 못해 풀이 죽어 칭얼거리는 창공이를 달랬다. 안내견 사용자인 노씨는 등정실패를 아쉬워하면서도 『안내견은 단순히 내 생활을 보조하는 차원을 넘어 내게 새로운 세상을 안겨주었다』라고 말했다.
정상을 지척에 둔 곳에서 「보조견 표지발급증」전달을 포함한 간단한 행사가 진행됐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충직하게 주인을 이끈 창공·재미·토담이에게는 보건복지부장관이 발급한 장애인보조견 표지가 전달됐다.
이로써 이 세 안내견은 올해부터 시행된 「장애인복지법 공공시설 편의시설 접근권」조항에 따라 주인과 함께 대중교통·식당 등 어느 곳에도 출입할 수 있게 됐다.
이어 에버랜드 신남식(48) 동물원장은 세계 맹인안내견협회 켄 로드(KEN LORD)회장이 보낸 축하 편지도 전달됐다. 비록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강풍을 뚫고 강행된 이번 백두산행은 국내에 활동중인 28마리의 안내견과 22만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백두산=최석영기자SYCHOI@SED.CO.KR
입력시간 2000/04/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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