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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품격을 높여라] <3> 낙제 수준 정치

"권력 잡을 수만 있다면…" 비방·흑색 선전으로 얼룩진 총선<br>너죽고 나살기식 싸움에 "튀고보자" 막말도 만연<br>표 의식한 졸속 공천탓에 정치는 실종 정략만 판쳐<br>유권자 약한 심판의지도 악순환 되풀이의 원인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현 통합진보당 당선자)이 지난해 11월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에 항의하며 정의화 국회부의장을 향해 최루탄을 터뜨리고 있다. /서울경제DB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다." 지난 199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일갈한 한국의 문제적 현실이 정치 부문만은 2012년에도 여전하다는 게 사회 전반의 중론이다. 정치의 품격은 한 나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지만 권력 싸움 속에 "격을 따지는 것은 사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 4ㆍ11 총선을 앞두고도 상대방을 악마로 만들어 말살시키려는 기획 폭로가 기승을 부린 바 있다. 정치권 밖에서 낙후된 정치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인사들도 여의도에 입성하면 일단 '튀고 보자'며 막말을 내뱉는 경우가 다반사다. 품위를 잃은 정치에 불신이 클 수밖에 없지만 유권자들이 정치권의 구태를 쉽게 잊고 심판 의지가 약한 것도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한 원인으로 꼽힌다. 대선을 앞두고 한국 정치에서 '격'은 완전히 실종될 위기를 맞고 있다.

낙제점을 면하기 어려운 한국의 정치 수준에서 '품격'은 자리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민주통합당의 총선 패배를 불러온 김용민 후보(서울 노원갑)의 과거 저질ㆍ막말 파문은 '졸속 공천'이 불씨가 됐다는 지적이 많다. 공정 공천을 천명해놓고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당 지도부의 계산이 역풍을 맞은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도 "수년 동안 출마에 공들인 후보들을 제쳐놓고 개인 재산도 아닌 지역구를 세습할 때 문제는 예견됐다"고 토로했다.

새누리당 당선자들의 잇단 탈당 도미노 역시 지역주의를 이용해 '내 사람을 심고 보자'는 권력욕이 빚은 후폭풍으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제수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태 당선자나 논문 표절이 확인된 문대성 당선자 모두 일찌감치 문제점이 제기됐지만 쇄신을 약속하며 당명까지 바꾼 새누리당은 못 본 채 하다 뒤늦게 여론에 떠밀려 '출당' 등의 조치를 검토했다.

"상대방을 악마로 몰고 가면 발전은 없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지적을 소위 '스펙' 좋은 한국의 정치인들이 모를 리 없다. 초선이든, 최다선이든 국회 입성의 첫 약속이 "정치의 품격을 높이겠다"는 것으로 대동소이한 것도 국민의 갈증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총선에서 페어플레이를 한 정치인들도 있다. 정치1번지인 종로의 경우 여야 거물들이 격조 있는 대결을 통해 표심을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석패한 6선의 새누리당 홍사덕 의원은 "깨끗하고 모범적인 선거를 치렀고 정세균 대표 등 다른 후보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권력의 향방 앞에서는 개인의 소신은 여의도의 '너 죽고 나 살기'식 정략에 쉽게 묻히고 결국에는 '같이 죽자'는 물타기로 변질되고 만다. 민주당이 정권심판론을 불 지필 비장의 무기로 '민간인 불법사찰'의 증인과 증거물을 공개하자 새누리당은 "참여정부의 불법사찰도 함께 규명돼야 한다"며 역공을 취한 바 있다. 민주당은 김용민 후보의 막말이 문제 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8년 전 현직에 있던 노무현 대통령을 막말로 풍자했던 연극을 재탕하며 반격의 소재로 삼기도 했다.



상대방의 약점에 사정없이 칼을 들이밀면서도 제 식구는 감싸기에 급급하다. 민주당은 끝까지 김용민 후보 사퇴에 소극적으로 대처했고 새누리당도 문대성ㆍ김형태 후보의 문제점을 경시하며 각각 상대 진영에만 책임의 화살을 날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비방과 흑색 선전은 주고 받으면서 가열되고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데 정치권이 그런 기본 이치를 알고도 외면한다"고 비판했다.

정치에 새 바람을 일으킬 신인들이 적은 것도 아니지만 보스 정치와 당론에 속박된 정치구조 속에 쉽사리 파묻혀 오히려 몸싸움 국회에 총대를 메고 나서는 실정이다. 4년 전 초선 국회의원 수는 133명, 19대 총선에서는 148명이 당선됐다. 하지만 정치 신인들이 튀려는 욕심에 더 심한 막말을 내뱉기 일쑤다. 18대 국회의원의 언어 사용시 품위를 조사했던 정성호 동명대 교수는 "상대에 대한 배려나 여유는 찾아 볼 수 없고 감정적 막말 사용만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유권자의 무관심과 심판의지가 약한 점도 정치권의 품격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제 투표를 도입한 호주(투표율 95%)를 논외로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투표율은 70% 안팎이지만 한국은 한참 뒤처지는 50% 전후에 머물러 있다. 익명을 원한 한 여론조사 전문업체 대표는 "정치권의 폭력과 막말이 문제되더라도 국민 여론은 '잠시 들끓다, 금세 식는다'며 이를 잘아는 정치인들이 그걸 이용한다. 꼭 표로 심판하겠다는 주인의식이 약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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