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계는 '0과 1'로만 모든 게 표현되지만 현실 세계는 그렇지 않다. 세상사는 '옳다와 그르다'나 '좋다와 나쁘다'와 같은 이분법적인 잣대로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소모적인 논쟁으로 사회적인 갈등만 조장될 뿐이다.
지식재산권 분야에서는 이러한 소모적인 논쟁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제주 한라봉과 장흥 표고버섯, 한산 모시 등 지역 명물을 등록해 보호하는 지리적 표시제도가 그렇다. 현재 지역 명물은 상표법의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과 농수산물품질관리법의 지리적 표시로 보호가 가능하다.
이분법적 사고로 양 제도가 중복되니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필자는 중복된 규제나 투자로 국가 전체적인 비효율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굳이 통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양 제도의 목적은 동일하지만 보호대상이나 침해시 권리구제 방법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어 국민이 자신에게 맞는 제도를 선택하도록 배려하는 게 합리적이다. 규제는 기업이나 국민에 대한 칼날이므로 여러 개가 있으면 안 되지만 권리자를 보호하고 아이디어 개발을 장려하는 것은 보호 받는 사람에게 두 개의 칼자루를 쥐여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안동 간고등어처럼 상표로만 보호가 가능한 것이 있다. 상표는 원료인 고등어가 안동에서 생산되지 않아도 그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가공하면 된다. 나전칠기나 남원목기와 같은 수공예품도 상표로만 보호된다. 아울러 품질관리법은 과태료 처분 같은 행정적 구제가 가능하고 상표법은 형사적 구제가 가능한 장점도 있다. 양 제도의 운영으로 국가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산업 역시 장려되므로 서로 공존해도 좋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컴퓨터프로그램 발명 사례도 이와 비슷하다. 현재 컴퓨터프로그램은 저작권만으로 충분히 보호가 가능하다는 주장과 특허로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저작권은 표현만을 보호하기에 기술적 아이디어를 도용한 프로그램 소스코드 변형은 보호할 수 없다. 반면 현행 특허법에서는 모방프로그램을 CD에 담아 무단 배포하면 특허침해가 되지만 온라인으로 배포하면 침해 여부가 불명확해진다. 특허법에 프로그램 온라인 전송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특허든 저작권이든 둘 다 가능하게 하고 프로그램 개발자가 양 제도 중 본인에게 적합한 것을 병렬적으로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송권 같은 경우도 특허나 저작권으로나 모두 보호가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논의해볼 수 있다.
이분법적 사고로 하나의 선택만 강요하기에는 시대가 변했다. 규제가 아닌 산업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하나로 정리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제도의 장단점을 제대로 알려 국민이 취사선택하게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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