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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Life] 엄홍현 EMK 뮤지컬컴퍼니 대표

"콧대 높은 유럽 뮤지컬도 대사 바꾸고 신곡 넣고… EMK스타일로 요리하죠"



쌀배달·포장마차로 밑천 모아 기획사 차렸지만 2년 만에 참패
절치부심끝 '모차르트'로 재도전
대사보다 음악·세트에 중점… '엘리자벳' '레베카' 등 잇단 흥행
멋있어 보여서 뛰어든 일… 어느 순간 운명처럼 빠져들어
창작뮤지컬 '마타하리' 시작… 라이선스 수출도 적극 나설 것



"당신 누군데?(Who are you?)" 가는 곳마다 퇴짜였다. 전세계 유명 프로듀서와 글로벌 뮤지컬 제작사에 한국에서 왔다는 젊은 남자의 이름 석 자는 애초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렇다 할 성공작도 없는 그의 작은 회사 역시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6~7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상황은 꽤나 역전됐다. 작품 계약을 위해 자기소개를 하는 게 일의 반이었던 청년은 유럽의 주요 제작사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한국의 유명 프로듀서가 됐다. 대표작 없던 그의 작은 회사는 다수의 흥행 대작을 만든 국내 3대 공연 제작사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 작품 위주의 국내 뮤지컬 시장에 유럽 뮤지컬을 소개하며 새 시장을 개척한 EMK 뮤지컬컴퍼니(이하 EMK)의 대표 엄홍현. 서울 통의동 EMK 사무실에서 만난 엄 대표는 벽면 한쪽을 채운 EMK 주요 작품 포스터를 가리키며 "이젠 '너 나 모르니?' 라고 반문할 정도는 된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뮤지컬 '팬텀' 개막 앞두고 밤잠 설쳐=엄 대표는 요즘 통 못 잔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숙면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오는 28일 개막하는 뮤지컬 '팬텀'의 개막을 앞두고 밀려오는 긴장 탓에 밤잠을 설친다고. "사실 이번 작품은 한 무대에서 보기 힘든 각 분야의 최고만을 캐스팅했어요. 출연자 개개인의 역량은 정말 자신이 있는데 작품 전반에 대한 평가는 어떨지 저도 많이 궁금하네요. 기존 뮤지컬과는 여러모로 다를 이 작품이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면 잠이 안 오죠."

프랑스 소설가 가스통 루르의 추리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한 팬텀에는 한국의 대표 뮤지컬 배우 류정한과 가수 박효신, 소프라노 임선혜, 발레리나 김주원 등 각 분야의 스타가 총출동한다. 환상의 캐스팅을 완성하기 위해 엄 대표는 2~3년간 공을 들였다. "임선혜씨가 지난해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할 때는 팬텀의 연출자 로버트 요한슨에게 '공연장에 직접 가서 그녀를 설득하라'고 부탁까지 했어요. 효신씨는 군대에 있을 때부터 작품 이야기를 건네며 물밑 작업을 했고요. 정환 형님, 주원씨를 비롯해 주요 배역 모두 결정 난 건 없이 설득만 하는 시간이 꽤 길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캐스팅이 성사되더군요." 엄 대표는 "지금은 이 조합으로 재연을 올릴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할 정도로 내게는 최고의 캐스팅"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사실 팬텀은 엄 대표가 처음부터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작품은 아니다. 그동안 EMK가 선보인 여러 공연을 통해 'EMK 스타일'을 간파한 외국 제작사와 관계자들이 먼저 제안을 해왔다. "4~5년 전 로버트 요한슨이 팬텀을 추천했는데 전 '오페라의 유령도 있는데 무슨 팬텀이냐'는 생각으로 흘려 들었어요. 그런데 그해 일본·유럽·미국 출장에서 현지 관계자들이 모두 '팬텀은 EMK에 딱 맞는 작품'이라며 추천을 하더군요." 묘한 인연이 느껴질 즈음 엄 대표는 뮤지컬 '모차르트' 재연을 위해 작품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팬텀의 가치에 눈을 돌렸다.

그는 "당시 내가 생각하는 모차르트와 연출가가 생각하는 모차르트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오페라의 유령도 얼마든지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침 일본에서 팬텀이 흥행에 성공하며 엄 대표는 또 다른 도전에 발을 내디뎠다.

◇외국 작품도 EMK 스타일로 요리 '배짱'="EMK는 확실한 색깔이 있어." 팬텀을 제안했던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강조했던 'EMK 스타일'은 무엇일까.

엄 대표는 자신 있게 그 색깔을 설명해나갔다. "저희는 음악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뮤지컬을 추구합니다. 대사가 있어도 송스루(노래로 모든 대사를 대체)에 가깝고 대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늘 음악이 깔리죠. EMK의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22인조부터 최대 32인조까지 있는 이유입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웅장하고 화려한 세트도 EMK 작품의 특징이다. 엄 대표는 "뮤지컬은 영상이 아니라 실제로 관객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작품"이라며 "관객에게 실재감을 전달하기 위해 화려함의 극치인 궁전 세트부터 배우의 의상에 이르기까지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고 전했다. 이어 "애초 EMK가 유럽 뮤지컬을 선호했다기보다는 음악과 세트를 중시하는 우리만의 스타일을 만들다 보니 여기에 잘 맞아떨어지는 유럽 작품을 주로 선보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라이선스(외국 오리지널 작품을 가져다가 한국 배우가 한국어로 연기하는 방식) 뮤지컬을 주로 올리지만 엄 대표는 나름의 고집(?)으로 외국 작품을 EMK 스타일로 요리한다. 자존심 센 원작자 눈치를 볼 법도 하지만 대사나 음악을 바꿔달라는 EMK의 요구는 거침이 없다.

"사실 콧대 높은 원작자들이 이런 부탁을 잘 안 들어주죠. 그런데 약간의 변형으로 관객이 환호하는 모습을 그들도 보거든요. 그러니 인정을 안 할 수 없는 거죠." 이번 팬텀 공연 역시 한국 공연을 위해 무려 4곡의 신곡이 추가됐다.

◇멋있어서 시작한 일, 사랑이 되다=뮤지컬에 미쳐 살고 있지만 "이 정도로 빠져들 줄은" 그도 미처 몰랐다. 사실 엄 대표가 뮤지컬 업계에 발을 내디딘 이유는 거두절미하고 "멋있어 보여서"였다.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충북 제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누구보다 성공에 대한 욕망이 컸다. 오죽하면 롤모델이 맨손으로 성공 신화를 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을까. 쌀 배달, 포장마차, 청바지 보따리상…. 안 해본 일 없이 돈을 벌며 밑천을 모았다. 2004년 작은 공연기획사를 차려 본격적으로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의욕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맨땅에 헤딩하며 열정을 불태웠지만 결과는 보기 좋은 참패. 2006년 체코 뮤지컬 '드라큘라'의 라이선스를 어렵게 확보해 무대에 올렸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회사 문을 닫아야 했다.

"당시 드라큘라 영상을 본 뒤 무작정 뮤지컬로 만들려고 했어요. ABC도 모른 채 '이거 뮤지컬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이선스 계약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같은 질문을 던져가며 가져온 작품이었는데…." 가슴 아픈 기억을 곱씹는 엄 대표의 표정은 뜻밖에도 덤덤했다. 정적을 깨고 돌아온 답변은 평소 호탕한 엄 대표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줬다. "사실 '실패하면 어때'라는 생각도 들어요. 적어도 시도는 해본 거니까요." 무모한 도전으로 혹독한 몸풀기를 한 엄 대표는 3년간 절치부심하며 본 게임을 준비했고 2009년 EMK 설립 후 모차르트(2010년)를 시작으로 몬테크리스토, 엘리자벳, 황태자 루돌프, 레베카 등을 잇달아 흥행시키며 그간의 설움을 씻어냈다.

"멋있고 돈 많이 벌 거라는 '착각'으로 시작한 일인데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빠져들었고 사랑하게 됐네요." 엄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뮤지컬과의 동거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할" 운명이다. 그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나인들 왜 없었겠느냐"며 "프로듀서의 삶만 풀어내도 책 몇 권이 나올 것"이라고 농담 섞인 하소연을 했다. 실제로 그는 뮤지컬 제작 스토리와 프로듀서의 애환을 담은 책을 준비하고 있다. 엄 대표가 이따금 입으로만 "이제 접자"를 외칠 뿐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느냐며 출근해 직원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건 뮤지컬에 대한 애증과 함께 '눈감을 수 없는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150여명의 인력이 함께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면 결코 이 일을 쉽게 생각할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올해 '마타하리' 시작으로 창작 작품 확대=그동안 외국 작품의 라이선스 공연만 올려온 EMK는 올 11월 첫 창작뮤지컬 '마타하리'로 또 한번의 승부수를 띄운다. 엄 대표는 "그동안 라이선스 작품을 가져오면서 음악과 대본을 한국 정서에 맞게 수정하며 노하우도 많이 생겼고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갈증도 커졌다"며 "올해 마타하리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를 원작으로 한 '조커(가제)'를 선보이는 등 매년 창작 작품을 한 편씩 올리겠다"고 밝혔다. EMK는 창작 작품의 해외 라이선스 수출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마타하리는 이미 최소 3개국과 계약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상태다. "그동안 외국에 로열티 많이 냈잖아요. 이제 우리 작품으로 그 돈 다시 받아 와야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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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2009년 EMK 뮤지컬컴퍼니 설립(現 대표·프로듀서)

△2012년 한국뮤지컬협회 이사(現)

△2014년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부회장(現)

△주요 작품;뮤지컬 드라큘라, 햄릿, 삼총사, 살인마 잭, 모차르트, 몬테크리스토, 잭더리퍼, 엘리자벳, 황태자 루돌프, 레베카, 태양왕, 마리 앙투아네트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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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10년 후 초연 캐스트 그대로 출연할 수 없어도 괜찮아. 그저 공연 후 모두가 함께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

엄 대표에게 팬텀의 주연 류정환이 건넨 한 마디는 선방의 죽비와 같았다. 회사도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고 흥행 효자 작품이 하나둘 쌓이며 여유를 느낄 즈음 날아든 이 말에 엄 대표는 "지금은 안주할 때가 아니다"라며 스스로 깊은 반성을 했다고. 10년 넘게 롱런하는 명작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뮤지컬 '팬텀'은 사실 대중에게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제작한 '오페라의 유령'으로 좀 더 익숙한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팬텀과 오페라의 유령 모두 프랑스 소설가 가스통 루르의 추리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흉측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극장 지하에 숨어 사는 '팬텀'과 아름다운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그리고 귀족 청년 '라울'의 엇갈린 사랑을 신비롭게 그렸다. 다만 '팬텀'은 '에릭'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팬텀으로 살아가게 됐는지 그의 과거를 중심으로 인간적인 부분에 좀 더 초점을 둔다. 음악 역시 오페레타에 가깝다. 극 중 에릭 아버지가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에서는 내레이션에 맞춰 무려 13분간 발레 공연이 펼쳐지는 '파격'도 경험할 수 있다.

"오페라, 발레, 클래식…. 각기 다른 장르가 모였지만 뮤지컬이라는 무대 위에 잘 융합됐다고 생각합니다. 연습하면 할수록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붙는다고 할까요."

엄 대표가 "관객에게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는, "최고의 캐스팅"이라고 자부하는 뮤지컬 팬텀은 4월28일부터 7월26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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