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철새 가창오리가 지금껏 남아 있다고 한다. 번식을 위해 진작 떠났어야 할 가창오리가 잔류하게 된 이유가 기막히다. 힘이 없기 때문이란다. 조류인플루엔자(AI)의 발병원으로 지목돼 먹이주기 행사가 중지된 탓에 장거리 비행을 감당해낼 충분한 영양을 비축하지 못한 채 한국에 머문다는 것. 영양부족설은 아직 추정이나 안타깝다. AI 발병원설도 추론이건만 서해안 일대 도래지에만 10만~17만마리 남았다는 가창오리는 앉아서 죽을 판이다.
△야비하다. 인간은…. 잔인하고 매정하다. '겨울 진객'이라며 반기던 때를 잊었던고. 주남저수지가 국민관광지로 각광 받게 된 계기도 1985년 가창오리가 발견되면서부터다. 당시 한국의 가창오리떼 발견 소식은 세계로 퍼졌다. 개체수가 수백~수천마리밖에 안 남았다던 가창오리가 한꺼번에 5,000마리나 관측됐으니 기쁨이 컸다. 개체수가 최근 크게 늘어났어도 중국과 일본에서는 여전히 귀한 철새로 대접받는다.
△가창오리는 아름다운 새다. 학명인 'anas formosa'부터 '아름다운 오리'라는 뜻이다. 한자 표기인 '街娼(가창)'에도 예쁜 철새라는 의미가 담겼다. 수컷의 머리에 초록과 노랑의 태극무늬가 선명하기에 북한에서는 '태극오리'로 불린다는 가창오리는 정작 1980년 초까지는 한국에서 발견되지 않고 중국과 일본에서 극소수가 월동하는 희귀조였다. 한국에서 개체수가 늘어난 이유는 간척 영농지의 풍부한 먹이 덕분이라는 게 정설이다.
△한국의 가창오리가 영양부족으로 날지 못한다면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세계적인 희귀조로서 '멸종위기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의 보호대상이기 때문이다. 국제적 비난을 막기 위해서라도 당국은 마땅히 먹이주기 행사 금지조치를 풀어야 한다. 가창오리의 비극은 고유가치관의 붕괴와 맞닿아있다. 배가 고파도 마지막 과실은 '까치밥'으로 남겨뒀던 고유의 인심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인면수심. 극단적 이기심의 시대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때때로 부끄럽다.
/권홍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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