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기채권에 투자하는 펀드에서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올 2분기 장기채 펀드의 자금 유출 규모는 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미국 정부재정 상황과 인플레이션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자들은 미국의 장기채 대신 단기채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26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금융정보업체 EPFR의 자료를 분석해 올 2분기 미국 장기채 펀드에서 110억 달러(약 15조 원)가 순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로 금융시장이 큰 혼란에 빠졌던 2020년 초 분기별 기준 최대 유출이다. 특히 최근 3년간 분기당 평균 약 200억 달러의 순유입이 이뤄졌던 것과 비교하면 시장의 분위기가 급변했다는 평가다. FT는 “펀드 자금 흐름은 대규모 미국 채권 시장의 일부만을 반영하지만 투자자 심리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장기채 펀드의 환매가 늘어난 것은 미국 연방정부 재정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이 추진 중인 감세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미국의 공공부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정부의 빚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장기채권에 대한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채권운용사 더블라인의 빌 캠벨은 “국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미국 국채를 장기간 보유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면서 “이는 큰 문제의 징후”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우려도 투자자들이 지적하는 부담 요인으로 평가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고율 관세 정책이 미국의 물가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장기채권은 쿠폰 지급이 오랜 기간 걸쳐 이뤄지는 만큼 물가 상승에 취약하다.
반면 투자자들의 단기채권에 대한 선호는 이어지고 있다. 실제 EPFR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단기채 펀드에 390억 달러 이상이 순유입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는 만큼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RBC 글로벌 자산운용의 미국 채권 책임자인 안제이 스키바는 “투자자들이 채권 포트폴리오의 분산을 강화할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미 재무부 채권 시장이 끝났거나 채권 포트폴리오의 핵심 자산의 역할이 사라졌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앞으로 미 국채를 매입할 때 만기가 긴 채권일수록 더 많은 수익률을 요구할 수 있다”며 “지금 당장 대형 충격이 올 것 같지는 않지만 시장에서 진동은 감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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