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적게 쓰는 가전제품에 부여되는 에너지효율등급제도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다. 변별력이 떨어지는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올 들어 등급을 받은 제습기 372종 가운데 무려 92%인 343종이 1등급이었다. 쌀의 품질에 따라 특·상·보통 등 세 가지 중 하나로 표기하도록 한 쌀 품질등급제도 유명무실한 상태다. 소비자원 조사 결과 시판 중인 포장 쌀 10개 가운데 7개 이상이 등급표기 없이 팔리고 있다. 양곡관리법에 따른 등급검사를 하지 않아도 '미검사' 표시만 하면 판매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품질등급제를 운영하는 것은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소비자들은 1등급 인증 마크가 찍힌 상품은 품질이 좋을 걸로 믿고 2~3배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산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품질등급제는 등급을 받지 않은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오인을 조장하면서 가격왜곡 현상만 부추길 뿐이다. 등급판정 신청기준을 현실화하고 심사의 변별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등 품질등급제 재정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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