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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저유가의 지정학 그리고 중국


35년 만에 국제유가가 대세하락기에 접어들었다. 유가하락에 따른 득실을 놓고 이런저런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세계경제에 평균적으로는 득이 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다. 원유시장이 소수가 생명수와 같은 자원을 독점하고 다수로부터 꼬박꼬박 세금을 거둬들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단순계산으로도 다수가 누릴 경제적 이익은 상당하다. 전세계 일평균 원유 소비량은 8,000만배럴이다.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떨어질 때마다 매일 8억달러, 연간이면 2,900억달러(약 323조원)가 몇몇 산유국 수중에 들어가는 대신 나머지 전세계 기업과 소비자들의 호주머니로 분산된다.

그러나 당장 보이는 경제 득실만 놓고 따지기에는 검은 황금의 영향력은 간단하지 않다. 원유는 달러 중심의 통화질서를 유지시키는 근간이며 지난 수십년간 수많은 전쟁의 원인이기도 했다. 산유국을 좌지우지하기 위해서 최대 원유 수입국인 미국은 외교정책을 조율해왔다.

이전의 유가 대하락기인 1980년대에도 정치적 격변이 있었다. 1980~1986년 국제유가의 실질 가격이 3분의2나 급락하면서 소련의 재정은 바닥나고 이에 군사력도 급속도로 위축됐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개혁개방의 길을 걸으면서 소련은 붕괴(1991년)의 길로 들어섰다.

역오일쇼크에 따른 지정학적 지각변동의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재정의 원유 의존도가 극도로 높은 중동 산유국들은 허리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내핍이 장기화되면 제2의 아랍의 봄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그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은근히 부각되는 중국의 존재감이다. 미국과 사사건건 대척점에 서 있는 중국은 이제 원유시장에서도 석유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신한 미국의 자리를 대신할 최대 수입국이 됐다. 서방의 경제제재와 유가하락으로 원투 펀치를 맞은 러시아는 중국과 밀월의 농도를 더해갈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중국으로부터 원유수출을 대가로 차관 구걸을 더 해야 할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 나온다.



게다가 원유시장은 매도자 우위 시장에서 매수자 우위 시장으로 넘어갔다. 큰손 매수자인 중국이 원유대금의 위안화 결제를 늘리겠다고 나서면 수출국들이 좋은 싫든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셰일붐이 예상치도 못하게 달러화의 지위를 좀먹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셈이다.

미국도 원유를 외교에 십분 활용할 것이다.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가스 의존도를 낮추고 아시아에서 중국을 대리 견제해주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에너지 고민을 덜어주자는 명목으로 대유럽 대일본 에너지 수출을 늘릴 것이다. 저유가는 주요2개국(G2)의 대립양상에 또 하나의 중대 변수가 될 듯하다.

이번 유가전쟁은 이제 막이 올랐다. 내년 눈여겨볼 대목은 미국 셰일업계의 탄성, 미국 정부의 원유수출 허용 여부, 그리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카르텔의 견고함이다. 올해 지정학적 위기는 예상과는 달리 유가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와는 반대로 유가가 지정학적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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