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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조선시대도…"

조선시대, 그것도 유교사상이 사회 전체를 옭죄고 있던 세종 때 당시의 최고 권력가들 39명과 간통해 조정을 발칵 뒤집어놓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유감동. 이번주 KBS 1TV 「역사스페셜」은 애정행각에 대한 죄과로 관비의 신세가 된 이 여인의 삶을 통해 혼인·이혼제도와 각종 성범죄의 행태와 처벌의 모습 등 조선 전기의 성도덕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한다. 29일 오후8시 방송.◇음란한 행실로 이혼당한 여인 유감동= 조선 세종 때 무안군수 최중기의 아내였던 유감동은 병을 핑계삼아 한양으로 올라와 음행을 일삼다가, 남편에게 이혼을 당한다. 사대부가 이혼을 하기 위해서는 왕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로 엄격한 이혼억제정책이 있었던 당시는 칠거지악을 범했다고 해도 쫓겨나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유감동의 경우처럼 음행을 범했을 때, 또는 부모에게 불손했거나 나쁜 병이 있을 때는 남편이 일방적인 이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세종시대는 자유부인들의 전성기였나=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간통사건 중 40%가 세종실록에 기록돼 있다. 과연 세종 때 이런 사건이 유독 많이 일어난 것일까. 고려시대의 풍속을 이어받은 태조 때도 이런 일들은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종시대에는 가부장제도를 정립하기 위해서 가정의 기반을 흐트러뜨리는 풍속을 교화시키는데 집중한다. 이를 위해 세종실록은 이혼이나 간통사건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던 것으로 보인다. ◇어우동과 유감동은 어떻게 달랐나= 유감동은 성종 때 음란행위로 처형됐던 어우동과 달리 노비형에 그친다. 두 여인의 운명이 엇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 전기는 후기에 비해서 남녀의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고 여성들에 대한 구속도 적었다는 점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같다. ◇유감동의 선택은 창기(娼妓)= 정절을 잃은 조선의 사대부 여인은 어떻게 됐을까. 대부분은 남편에게는 버림받고, 친정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보통 자살로 이어지는 극단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유감동은 소중한 목숨을 버리지 않고 창기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조선이라는 나라에 태어나 그 시대의 성도덕을 지키지 못해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던 유감동. 세월은 500여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이땅에는 제2, 제3의 유감동이 계속 나오고 있으며, 「여성과 성 도덕」이라는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문성진기자HNSJ@SED.CO.KR 입력시간 2000/04/2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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