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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건축문화대상 건축인상의 영예는 ‘최순우 옛집’ 등 전통 건축물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을 펼쳐 온 사단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대표 문국현ㆍ양병이)에게 돌아갔다. 내셔널트러스트란 시민들의 자발적 기증ㆍ기부를 재원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이나 문화 자산을 확보한 뒤 이를 영구히 관리ㆍ보전하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 운동이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 사학자 혜곡 최순우 선생의 서울 성북동 고택(古宅)을 매입한 것은 지난 2002년 12월. 혜곡 선생이 작고한 뒤 외동딸이 관리해 오던 이 집은 다세대 주택 건축 바람에 밀려 자칫 헐릴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혜곡 전집을 낸 우찬규 학고재 대표 등이 기부한 8억원 가량으로 매입금을 조성해 최순우 옛집을 사들인 뒤 1년 여에 걸친 보수와 복원을 거쳐 2004년 4월 일반에 개방했다. 인천시 강화군의 매화마름 군락지에 이어 두 번째로 내놓은 ‘시민자산’이다. 최순우 옛집은 조선 말기 선비 집의 운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전통 한옥이다. 혜곡 선생이 76년 사들여 84년 작고할 때까지 살며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등의 집필 활동을 벌였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지 120평 규모에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소나무ㆍ산수유 등이 심어진 뒤뜰이 아름답다. ‘매심사(梅心舍)’ ‘매죽수선재(梅竹水仙齋)’ ‘오수당(午睡堂)’ 등 추사 김정희와 단원 김홍도의 글씨로 새겨 곳곳에 걸어놓은 현판에서도 선비의 멋이 느껴진다. 서재에는 혜곡 선생이 직접 쓴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즉 ‘문을 닫아걸면 이곳이 바로 깊은 산중’이라는 뜻의 현판이 걸려있다. 최순우 옛집의 복원 작업은 먼저 혜곡 선생 생전의 생활 모습을 고증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내부의 가구배치나 문짝들의 무늬, 정원의 조경상태 등 가능한 모든 정보를 수집한 뒤 한국가구박물관의 도움을 받아 복원 도면을 꾸몄다. 건축법상의 기준을 준수하고 이웃 주민들의 생활편의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도면을 몇 차례 수정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썩은 목재들이 교체되고 상한 벽들이 새로 미장되는가 하면 전통 한옥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산자를 치고 기와를 얹는 등의 섬세한 복원 작업이 1년 여에 걸쳐 진행됐다. 건축문화인상 조사위원회는 “전통 건축을 바라보는 사회적 관심을 높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우리나라 건축문화를 부흥시키는 큰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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