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들이 구제금융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사상 유례 없는 재정주권 포기를 그리스에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16일 보도했다. 재무장관들은 오는 2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어 이 같은 방안을 포함한 그리스 구제금융 패키지를 최종 논의할 계획이다.
구제금융 패키지에는 우선 '제3자 특별계정(에스크로)' 설치가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과 프랑스가 지난달 처음으로 제안한 이 방안은 1,300유로의 구제금융을 순차적으로 지급하되 이 특별계정에 돈을 넣어둬 그리스의 지출을 감시하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또한 그리스의 재정지출 내역을 상시로 들여다보고 감독하는 모니터링 기구도 신설할 계획이다. 구제금융이 그리스 공무원의 연금 등으로 방만하게 쓰이는 것을 막겠다는 얘기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이 같은 내용의 구제금융 패키지에 최종 합의하면 그리스 국채교환 프로그램(PSI)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FT는 22일부터 약 1주일 동안 민간채권단의 국채교환이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각에서는 그리스 구제금융이 불발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EU의 한 고위관계자는 "그리스의 현재 긴축수준으로는 202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액이 128%에 달해 최초 목표치인 120%를 초과할 것으로 분석된다"며 "이 경우 유로존 국가들에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차라리 그리스를 디폴트(채무불이행)시키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리스가 EU의 재정주권 표기 요구를 끝내 거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중앙은행(ECB)이 민간채권단의 PSI 실행에 한발 앞서 국채교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이날 보도해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액면가 500억유로어치의 그리스 국채를 400억유로에 매입해 보유하고 있는 ECB는 PSI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환국채 만기시 손실을 보지 않고 100억유로의 시세차익을 남기는 것은 물론 이자까지 받을 수 있다.
최대 70%의 손실을 보는 민간채권단이 이러한 불공정 대우를 빌미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PSI 참여를 거부할 경우 그리스 구제금융은 다시 한번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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