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정쟁을 일삼으며 정책 수행의 발목을 잡아온 미국 정치권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서만큼은 모처럼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양당이 일자리 창출과 자유무역이라는 국가적 대의를 위해 일치단결했다며 일사천리 통과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미 의회는 이날 한국 등 3개국 FTA 이행법안 표결에 앞서 오전10시부터 오후4시를 한참 지난 시간까지 지루하게 토론을 이어갔지만 표결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이미 토론 후 구두표결에서 사실상 가결이 확정된 한미 FTA 이행법안은 전자표결에서 찬성 278표, 반대 151표의 압도적 지지로 무난히 통과됐으며 곧 이어 시작된 상원 표결에서도 찬성 83표에 반대 15표로 가결 처리됐다. 내년 대선을 의식해 민주ㆍ공화 양당이 극심한 상호 견제와 발목잡기를 일삼고 있는 가운데 최근 워싱턴 정가에서 보기 드물게 순조로운 정치적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파나마와 콜롬비아와의 FTA 비준도 순조롭게 이뤄졌다. 파나마 FTA 이행법안은 하원에서 찬성 300표 대 반대 129표, 상원에서도 77대22표로 가결됐으며 콜롬비아 FTA 역시 하원에서 찬성 262 대 반대 167, 상원에서는 66대33으로 줄줄이 통과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의회의 FTA 이행법안 처리가 미국 입장에서는 경제적 이득보다 정치ㆍ외교적 성과라는 측면에서 중요성을 띤다고 지적했다. 실제 일자리 창출이나 수출 증대 효과는 크지 않지만 재정적자 감축과 국채 상한 증액, 증세 문제 등에서 사사건건 충돌하며 국정의 혼란과 정책에 대한 국민 불신을 초래했던 민주ㆍ공화 양당이 자유무역을 통해 미국 경제성장을 이끌어낸다는 관점에서 모처럼 일치된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실제 불과 하루 전인 11일에도 공화당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민주당의 '일자리 창출 법안'을 부결시키며 팽팽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날 표결을 마친 뒤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의원은 "마침내 우리(양당)가 초당파적인 견지에서 국가를 위해서 뭔가 중요한 일을 하게 됐다"고 FTA 법안 처리의 의미를 강조했다. 공화당의 데이브 캠프 하원 세입위원장도 "이번 협정이 승인된 것은 수년래 가장 중요한 일자리 창출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한미 FTA 비준은 민주당 정권 이후 정체됐던 미국의 FTA 행보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은 앞서 공화당의 부시 행정부에서 14개국과의 FTA를 성사시키며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지난 2007년 페루와의 FTA 비준을 끝으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2008년부터는 의회를 통과한 비준안이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미 언론들은 지적했다. 한미 FTA 이행에 가장 열성을 보인 오바마 대통령도 취임 초에는 자유무역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경제 환경 속에서 한미 FTA를 일자리 창출 동력으로 삼겠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일부 의원들은 여전히 FTA가 미국의 일자리를 외국에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세 투표에서 모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으며 민주당의 피트 드파지오 오리건주 의원도 한미 FTA가 한국 측 자동차업체에만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 협정으로 미국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 FTA 이행으로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섬유업계가 모여 있는 지역의 공화당 의원들도 자국 업계가 받는 타격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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