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대선 패배의 교훈과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갖고 있는 새누리당이 미국 광우병 재발에 대한 입장을 급선회했다. 당초 '필요하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는 어정쩡한 대처에서 27일 즉각적 검역중단을 정부에 촉구하고 나서는 등 반미 분위기 확산과 먹거리 불안을 조기 차단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새누리당은 이날 "미 광우병 발생에 대해 정부의 검역강화 조치는 미흡하다"며 "즉각 검역을 중단해 국민 불안을 해소하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검역중단을 재차 요구하며 "정부가 국민의 위생과 안전보다 무역 마찰을 피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는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검역 중단은 사실상 미 쇠고기의 수입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새누리당은 26일까지 "문제가 있으면 수입을 중단"한다는 입장에서 한층 나아간 것이다. 당의 한 핵심관계자도 "실무회의에서는 정부 입장과 비슷했는데 주요 당직자 회의 등을 거치며 (대응 조치 수준이) 훨씬 더 세졌다"며 "대선을 앞둔 전략적 판단이 개입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미 광우병 재발에 대한 정부 조치가 말 바꾸기 논란 속에 국민 불안이 커지고 반미 감정까지 불러 일으키자 여권이 패배했던 2002년 대선 경험 등이 거론되면서 초기부터 확실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그해 6월 발생한 여중생 효순ㆍ미선양의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 등으로 조기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졌다. 촛불의 원조로 불리는 '효순∙미선양 사건'에 반미 감정이 전국으로 번지면서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57만표 차이로 이 후보에 대역전극을 이뤄낸 바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효순ㆍ미선이 사건이 촉발한 반미 감정이 당시 대선 패배의 원인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며 "40~50대 주부 등 핵심 지지층이 이탈하고 상당수 중산층도 등을 돌렸다"고 설명했다.
또 2008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문제가 전국적인 촛불집회로 이어지며 정권을 휘청이게 할 만큼 위력을 발휘한 바 있어 새누리당은 이번 광우병 사태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면 대선 핵심 어젠다를 또 야당에 내줄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광우병 문제는 먹거리 안전과 반미 감정이 맞물려 폭발력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광우병 발생에 따른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다음달 1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를 열자는 야권의 제의에도 즉각 응하며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을 불러 미 쇠고기 수입제한 조치 등을 촉구할 방침이다.
예상보다 기민한 새누리당의 대응에 대해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여권이 주말까지 광우병 문제를 안이하게 방치했으면 국민적 반발이 크게 확산됐을 것"이라며 "위기상황 대응이 과거보다 치밀하고 빨라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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