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딸과 말다툼 끝에 도저히 참지 못하게 된 A씨는 파리채로 아이를 마구 때렸다. 딸내미가울면서 대들었다. "내가 파리야, 파리? 왜 사람을 파리채로 때려?" A씨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야! 이년아, 니가 그럼 효자손으로 맞으면 효자되니? 효자돼?"
40년간 기자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 사건을 만난 저자가 2013년부터 올해 5월까지 인터넷에 연재한 칼럼을 엮어 에세이로 펴냈다. 책은 평범한 일상에서 소소한 웃음을 안겨주는 에피소드 속에서 새로운 의미나 교훈을 찾아낸다. 딸 아이와의 웃지 못할 말다툼 속에서 점점 더 자식 키우기 어려워지는 세상의 목소리를 듣고, '공부를 못하는 성격이에요'라는 말처럼 아무 데나 '성격'을 갖다 붙이는 세태를 보며 이혼과 자살마저 성격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세상의 씁쓸함을 발견한다.
이 밖에 입만 열면 '금도를 지키라'고 말하지만 '금도(襟度)'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사용하는 정치인들, '낮 대신 밤에 이불을 털어 고급 아파트의 품격을 지키자'는 어느 아파트 안내문의 왜곡된 정서를 소개하며 따끔한 풍자도 내뱉는다. 저자는 인간이 아니라 새들의 모임을 연상시키는 '대한 조류 협회'라는 단체 이름, '음주 운전 단속'이 아닌 '음주 단속'이라 써 있는 안내판 등 잘못된 언어 습관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좋은 유머의 소재로 승화시켰다.
객관과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사를 구경하고 전달하고 논평하고 분석하는 일을 업으로 살아온 저자의 담담하면서도 위트 있는 문장은 간결하지만 임팩트있다. 멋쩍은 실수담부터 상식 발굴, 세대 간 소통의 문제까지. 웃음거리 넘쳐나는 글을 읽는 동안 독자는 마냥 웃기 힘든 씁쓸한 세상 이야기도 함께 접하게 된다.
저자가 서문에서 소개한 인용구가 이 책의 특징을 제대로 설명한다. '유머러스한 이야기는 진지하게 말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은 그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우스운 점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눈치 채지 못하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정하고 웃기려는 노력도, 장치도 없다. 그저 담담하게 에피소드와 생각을 나열하지만 그 속에 묘한 유머와 교훈이 담겨있다.
저자가 유머에 부여하는 가치는 남다르다. "유머에는 인간적인 정과 슬픔이 담겨 있다. 유머 감각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관용, 세상 일에 대한 사리와 분별 능력이다." 1만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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