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자동차의 기름이 줄줄 새고 있다. 휘발유나 경유는 온도가 상승하면 부피가 늘어나기 때문에 요즘과 같은 날씨에 낮에 주유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주유의 온도보정에 나설 경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사실상 이를 방관하고 있다.
13일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현재 휘발유의 국제표준온도는 15도다. 기온이 1도 오르면 부피는 휘발유가 0.11%(0.0011리터), 경유가 0.09%(0.0009리터) 늘어난다. 때문에 온도가 높은 여름철에 주유를 하면 운전자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차량에 같은 70리터를 주유해도 35도까지 달궈진 휘발유는 15도인 휘발유보다 1.54리터(70리터×20도×0.0011리터)가 덜 들어간다. 온도 상승으로 휘발유의 부피가 커져 있어서다.
폭염 속에 주유를 할 때는 풍선처럼 불어난 기름이 차량 주유탱크 안에서 온도가 떨어지면 그만큼 줄어들게 돼 운전자는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현행 계량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주유소 주유기의 최대사용 오차는 0.75%다. 이 범위를 넘을 경우 과태료 등의 처벌을 받는다. 70리터 기준으로 최대 0.525리터까지 오차를 인정하는 것인데 온도가 23~24도까지 오르면 이 기준은 무색해진다. 폭염 속에서 거의 대부분의 주유소가 최대사용 오차를 위반하는 것이다.
정부도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주유기에 연료의 온도와 비중을 측정해 판매할 수 있는 온도보정장치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게 고민이다.
1대당 약 258만원인 기기를 전국 1만3,000개 주유소에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설령 설치해도 기름값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여름철에는 석유의 부피가 커져 소비자가 피해를 보지만 겨울철에는 반대 현상이 벌어져 이익을 보게 된다"면서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은 굳이 온도보정장치를 설치할 필요는 없다. 괜히 기름값을 인상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폭염이 연일 계속되는 등 이상고온 현상이 일반화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도 소비자의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석유감시시민모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날씨 탓만 할 게 아니라 여름철 한낮에 주유하는 것을 자제하도록 홍보 활동을 벌이거나 정유사나 주유소들이 온도보정장치를 달도록 유도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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