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관련 면책비율이 98%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만 보면 부실대출로 책임추궁을 당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작 일선창구에서는 면책제도 자체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고 꼭 필요한 중소기업들은 은행의 보신적 태도에 발을 구르고 있다. '무늬만 면책'이고 제도 자체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얘기다.
서울경제신문이 18일 입수한 금융감독원의 은행별 면책비율에 따르면 면책규정을 새로 도입한 지난 2012년 4월부터 올 3월까지 평균 면책률은 98.3%였다. 은행이 중소기업에 대출한 뒤 부실로 판명된 3만138건 중 2만9,619건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이다.
은행별로 보면 면책건수가 가장 많은 국민은행이 99.8%의 면책률을 보였다. 부실여신 1만건당 20여건을 제외하고는 누구의 잘못도 따지지 않은 셈이다. 하나은행은 99.7%, 기업은행도 98%였다. 제주은행은 59건의 부실여신 전부를 면책해줬다. 우리은행만이 87.7%에 그쳤다.
면책은 중기대출을 독려하기 위해 대출승인시 규정을 지켰다면 부실이 발생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제도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지난해 4월 담보는 없지만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이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면책제도를 수술했다.
이처럼 대대적으로 손질했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은행대출에 목말라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최근 조사를 보면 금융권의 중기 자금지원 강화 노력에 76.5%가 부정적이었다.
은행의 대출 실무자들은 면책제도 운영에 원인이 있다고 꼬집는다. 국회 정무위 박대동 의원실의 자료를 보면 18개 시중은행은 모두 금융당국의 지도대로 면책규정을 내규에 반영했다. 그러나 일반은행의 중기 대출담당 직원들은 보이지 않는 인사상 불이익을 걱정하고 있다. 정부가 지분을 소유한 국책은행은 금감원의 면책규정과 다른 잣대로 제재하는 감사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오히려 강화된 면책제도를 악용해 부실이 뻔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구제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제도 자체가 부실ㆍ왜곡돼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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