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을 되찾은 장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연기해두었던 갖가지 기전의 대국을 치르는 것이었다. 명인전 7번기가 최종국까지 가는 바람에 다른 기전들은 무작정 연기되고 있었다. 굵직한 것만 꼽자면 우선 랭킹1위 기전인 기성전의 도전자결정국부터 두어야 했다. 상대는 선배인 조치훈9단. 그리고 본인방전 본선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들 국내 기전보다 먼저 치러야 하는 것이 LG배였다. LG배 8강전의 상대는 한국의 이세돌9단. 지금까지의 상대 전적은 2대2였지만 연초에 도요타덴소배 결승에서 2대1로 패한 장쉬로서는 설욕의 기회를 만들고 싶은 입장이다. 더구나 대국 장소가 도쿄의 일본기원이므로 새로 명인에 오른 장쉬로서는 중인환시리에 멋진 설욕전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한국측에서도 이 바둑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사이버오로에서는 원성진8단이 실시간 생중계를 맡았고 바둑TV에서는 유창혁9단이 하루종일 마이크를 잡았다. 현지 검토실에는 LG배해설위원인 최규병9단이 관전기자 이홍렬씨와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원성진8단의 옆에는 단골 검토손님인 서봉수9단과 루이9단이 오늘도 자리를 지켰고…. “뭐야. 약올리기 포석인가.” 서봉수9단이 백4까지의 포진을 보고 웃었다. 흉내내기의 일종인 것이다. 백6의 높은한칸 협공은 이례적이다. 60년대에는 일본의 도전기에 자주 등장했는데 요즈음은 거의 사라진 패턴이다. 필자가 백14에 대하여 대안이라고 참고도1의 백1을 제시했다가 서봉수9단의 폭소를 유발시켰다. “나중에 흑이 A에 꼬부리는 게 선수가 되지 않는다. 백으로서는 유력한 착상 아닐까.”(필자)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잊어버리셔. 중앙 방면에 힘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에 백이 못써.”(서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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