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때 발생하는 등록세, 교육세, 신청 수수료, 법무사 수수료 등의 근저당 설정비를 둘러싼 사상 최대 규모의 집단소송이 전국 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법원의 첫 판단이어서 비슷한 사건 다른 판결에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근저당 설정 비용을 부담한 대출자 전부가 소송을 제기해 이길 경우 금융사가 돌려줘야 할 금액이 최대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부천지원 이창경 판사는 최근 이모(85)씨가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한 신용협동조합을 상대로 “근저당 설정비용과 이자 등 70만원을 돌려달라”며 낸 부당이득금반환 청구소송에서 “이씨에게 68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근저당 설정계약 약관은 외형상 고객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은행과 고객의 거래상 지위, 거래 현실에 비추면 실질적으로 고객이 선택권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출거래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금융기관이 이를 이용해 금융기관이 부담해야 할 비용까지 고객이 지게 하거나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등 고객에게 전가시키도록 한 것”이라며 “고객에게 불리한 불공정 약관조항에 해당해 무효”라고 지적했다.
그 동안 근저당 설정비 소송을 낸 고객 측과 금융사는 계약 약관이 무효인지, 또 약관이 무효라면 비용은 대출자와 금융회사 중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를 놓고 다퉈왔다.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소멸시효가 5년인지 10년인지 하는 것 역시 쟁점이었다. 인천지법 부천지원의 판결은 소멸시효를 제외한 나머지 두 쟁점에 대해 사실상 대출자의 손을 들어줬다.
금융계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결과를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을 보였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에서 은행 약관에 대한 개정권고가 있었고 금융권도 이를 반영해 고객과 협의를 하도록 정리됐다”며 “은행은 근저당설정 원가를 감안해 금리를 책정한 만큼 근저당 설정비를 고객에게 전가했다고만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대출자가 거는) 모든 소송에서 진다면 은행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천문학적인 규모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8월 '근저당 설정비 등 대출 부대비용을 소비자가 부담케 한 은행 약관은 불공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도 은행들에게 '2003년 1월 이후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근저당 설정비 전액을 고객에게 환급하고 인지세는 50% 돌려주라'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은행연합회 측은 "고객과 합의해 근저당 설정비를 받은 만큼 돌려줄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고객 270명이 국민은행을 상대로 4억 3,700여만원을 돌려 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의 1심 선고는 다음달 6일 이뤄진다. 김모씨 등 30여명이 하나은행을 상대로 낸 같은 내용의 소송 1심 선고도 서울중앙지법에서 다음달 20일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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