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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사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내년에 '신뢰'를 경영 키워드로 삼아 고객중심경영과 브랜드경영을 대폭 강화한다. 이 같은 방침 아래 현대ㆍ기아차는 내년 글로벌 생산ㆍ판매 목표를 공장증설에 따른 증가분만큼만 반영한 750만대 수준으로 설정하고 외형적 양적 확대보다는 신뢰강화 등 질적 성장에 보다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6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오는 10일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현대ㆍ기아차 해외 법인장 회의를 열고 이 같은 경영 지침을 전달하는 한편 각 지역별 생산ㆍ판매 목표를 공유할 방침이다. 이번 법인장 회의에는 존 크라프칙 현대차 미국 판매법인장을 비롯한 전 세계 판매법인과 생산법인의 대표가 전원 참석한다.
정 회장이 내년 경영의 키워드를 '신뢰'로 정한 것은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의 권력 지도 변화, 경제 위기 지속, 보호무역 기조 강화 등 세계 정세가 여전히 불투명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과거 미국 금융위기 때 펼쳤던 어슈어런스 프로그램과 같은 과감한 마케팅보다는 소비자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정책이 더욱 중요하다고 정 회장은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미국에서 터진 연비 과장 사건은 신뢰 경영 도입의 기폭제가 됐다고 자동차 업계는 보고 있다.
현대ㆍ기아차가 신뢰를 높이기 위해 택한 실천 전략은 '고객 중심 경영 강화'와 '브랜드 경영 강화'다. 고객 접점에서의 서비스를 대폭 개선하고 브랜드 친밀도를 높여 이를 제품과 회사에 대한 신뢰 향상으로 연결시킨다는 전략이다. 회사 관계자는 "내년은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을 펼쳐 내실 있는 성장에 보다 집중하겠다"며 "또한 경제가 불안할수록 브랜드 가치가 높은 회사만이 살아남는다는 교훈에 따라 브랜드 친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지역별로는 미국의 경우 자동차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할인 등 물량 공세를 펴기보다는 제값 받기 전략을 유지해 소비자 신뢰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광고 등 브랜드 활동을 강화해 소비자의 친밀도를 높여나간다는 계획이다.
유럽은 위기가 증폭될 가능성이 크지만 스포츠 마케팅 등 브랜드 강화 활동을 꾸준히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유럽에서는 올해 판매량을 지키기만 해도 점유율을 높일 수 있기에 오히려 내년은 브랜드 경영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호기가 될 수 있다는 '역발상'이 정 회장의 아이디어다.
문제는 중국이다. 최대 교역 상대인 미국과 유럽의 불황 여파가 중국 내수에 본격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국 정부의 대도시 차량 등록 대수 제한 정책 확대와 토종 브랜드 육성 정책, 유가 상승 등으로 자동차 시장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현대ㆍ기아차 관계자는 "이 같은 시기 자존심 강한 중국인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현지화 활동이 필요하다"면서 "기업 이미지 자체를 현지화해 고객 신뢰도를 높이는 전략을 실행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대ㆍ기아차의 내년 글로벌 생산ㆍ판매 목표 750만대는 올해 실적 예상치인 710만~720만대에서 5% 안팎만 늘려잡은 보수적인 수치다. 내년 기아차 광주공장 증설과 현대차 베이징 3공장 및 브라질 공장 생산 본격화에 따른 생산 증가분만큼만 목표에 반영했다. 매년 5~10%씩 목표를 늘려잡아 온 것과는 정반대다.
현대ㆍ기아차 관계자는 "정 회장은 올해 '내실'을 경영 키워드로 설정해 큰 성과를 거뒀다"면서 "내년 키워드인 '신뢰'는 회사 내부적인 개념에 머물던 내실을 고객으로까지 확대한 것인 만큼 또다른 성공의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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