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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흐팅' 재산·경영권방어 편법 수단으로

마일란, 테바 적대적 M&A 맞서

네덜란드에 스티흐팅 세운 뒤 주요 경영전략에 독점적 거부권

소유주 없는 법인설립 가능… 당국·주주 영향 없이 경영권 보호

세제대상서도 대부분 빠져 슈퍼리치 상속·증여에 활용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수탈 위협에 시달리게 된 네덜란드 기업들은 재산을 지키기 위한 한가지 묘수를 발견했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위치해 독일의 손이 미치지 않는 네덜란드령 앤틸리스제도에 '스티흐팅(Stichting·재단)'을 만들어 회사 소유권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경영권 및 자산을 보호한 것. 이런 기원을 가진 스티흐팅이 글로벌 기업 및 슈퍼리치의 경영권이나 재산을 지키는 편법적 수단이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티흐팅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졌음에도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다. 이것이 다시 주목 받게 된 것은 21일 세계 최대 제네릭 의약품 전문회사 테바가 미국 마일란사를 상대로 시도한 400억달러 규모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계기가 됐다. 이 합병에 반대하는 마일란이 이미 이달 초 네덜란드에 스티흐팅을 설립, 여기에 회사의 주요 경영전략과 관련한 '독점적 거부권'을 부여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 것이다.

스티흐팅 설립을 위해 필요한 주주 및 관련당국의 승인은 지난해 12월 미국 제약회사 애벗래버러토리스의 비제약사업 분야 인수 당시 제출한 200쪽짜리 신고서에 문장 몇 줄을 끼워 넣는 식으로 이뤄졌다. 스티흐팅에 준 권한을 실제 활용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마일란이 자사의 의사에 반하는 M&A로부터 자사를 방어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 같은 은밀한 방법을 썼음은 분명하다고 WSJ는 전했다.

스티흐팅의 가장 큰 특징은 네덜란드 법에 의거해 소유주가 없는 법인 설립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 설립절차가 단순하고 설립목적도 필요에 따라 다양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이 같은 특징을 활용하면 정부 당국이나 경쟁업체, 나아가 주주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최대한 자유롭게 자사의 자산이나 경영권 등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유럽 및 미국 기업들은 비교적 자주 활용되는 △황금주 △포이즌필 △황금낙하산과 함께 스티흐팅 설립을 또 다른 적대적 M&A 방어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실제 지난 2000년대 중반 유럽 철강업체 아르셀로는 세계 최대 철강회사 미탈스틸의 공격을 막기 위해 이 방법을 썼고 스웨덴의 유명 가구업체 이케아도 경영권 방어 등을 위해 스티흐팅을 경영 지배구조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네덜란드에 등록된 스티흐팅은 12만5,000개가 넘는다.



스티흐팅은 네덜란드 세제 대상에서도 대부분 제외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세금 전문가들이 부유한 고객들에게 스티흐팅을 권유하는 사례가 최근 늘고 있고 이를 통해 상속·증여세 납부를 최소화한 채 재산을 물려주는 경우도 많다고 WSJ는 전했다.

국제 제재에 직면한 법인이나 인사가 이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스티흐팅이 활용된다. 러시아의 억만장자 미하일 프리드만은 최근 영국 법인 소유의 북해가스전 매입을 시도하면서 스티흐팅 구조를 이용하려 했다.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 명단에 자신이 포함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최근 이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해당 거래를 불허했다.

비영리 금융감시 단체 글로벌파이낸셜인테그리티(GFI)의 조슈아 사이던 연구원은 "온갖 비밀스럽고 흉악한 행위들이 이 구조(스티흐팅)를 통해 이뤄진다"며 "한 국가 시스템을 활용해 법적 허구를 만들어내고 이를 활용해 공공연하게 재산을 숨기는 수많은 방법 중 전형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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