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는 그동안 미국의 시장경제를 모방해 성장해왔지만 고용 없는 성장과 양극화 심화 등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달성할 신모델로 사회적 시장경제가 경기도에서 뿌리내리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남경필(50·사진) 경기도지사는 지난 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용 없는 성장과 양극화 등 국내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를 제시했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독일 등 유럽에서는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 패러다임으로 주목된다. 남 지사는 "사회적 시장경제는 독일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시장경제에 사회적 가치를 입힌 것"이라며 "이는 고령화와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 때문에 남 지사가 최근 관심을 가지고 읽는 책 중에는 독일과 관련된 것이 많다. 현재는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라는 책을 정독하고 있다고 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냉철한 리더십과 실사구시 철학을 일목요연하게 묘사한 책으로 메르켈의 신념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 지사는 메르켈의 리더십 연구와 함께 어떻게 독일이 전후 부국강병을 이뤘는지를 되짚어보며 경기도에도 '독일 모델'을 뿌리내리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남 지사는 "독일 우파진영은 완전 자유시장경제가 탐욕으로 위기를 겪고 나자 지속 가능한 시장경제가 되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사회적 가치를 시장경제에 접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사회적 시장경제의 개념을 만들었다"며 "6·4지방선거에서 도지사에 당선된 뒤 이 같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연합정치라는 것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남 지사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에는 앞으로 인센티브를 주면서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공동체사업 등 중요한 가치를 만들어나가겠다"며 "이를 통해 베이비부머 같은 은퇴자와 고령자들에게 취업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 지사는 "상위 20%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민이 연령대와 상관없이 불안하게 살아가는 게 현실"이라며 "나머지 80%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은 정치인의 덕목이고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사회적 시장경제와 사회적 일자리가 답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남 지사가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연합정치는 최근 첫 단추를 끼는 데 성공하면서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5일 '경기도 연합정치 실현을 위한 정책협의회(경기연정정책협의회)에 참여한 도의회의 이승철 새누리당 대표와 김현삼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생활임금 조례 제정과 친환경 무상급식 지원, 고위공무원과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실시 등 20개 사항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했다. 남 지사는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제발 여야가 진영논리로 싸움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선거 때는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선거가 끝나면 여든 야든 힘을 합쳐 도민을 행복하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도록 일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정은 이 같은 국민적 기대를 가장 먼저 실천해 보였고 첫 출발도 긍정적이어서 남 지사 특유의 추진력과 정치력이 정치권에서 새롭게 조명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 지사는 "연정을 위해 취임 직후부터 오랜 기간 서로 협의하고 토론한 끝에 완성된 것"이라며 "경기도에서는 여야 진영이 다르다고 해서 과거와 같이 몸싸움을 벌이는 구태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남 지사는 "경기도는 규모도 크고 농촌과 어촌 등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며 "도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농업과 어업, 전통적인 제조업뿐만 아니라 첨단 바이오·정보기술(IT) 산업과 문화콘텐츠 등 고부가가치 산업 등을 모두 발전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역별로 처한 환경이 다른 만큼 지역별 맞춤형 발전정책을 수립하겠다는 구상이다. 남 지사는 우선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기 북부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조직개편에서도 경제투자실의 5개 부서를 북부청으로 이전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였을 정도다. 남 지사는 북부지역 개발의 거점으로 동두천과 양주·포천 등지를 꼽고 있다. 이들 지역은 수도권 과밀규제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이중삼중 규제가 가해져 투자제한은 물론 인프라 구축도 어려운 상황이다. 수도권에 인접했지만 지방도시보다 더 낙후한 채 방치돼 있다.
남 지사는 최근 업무보고에서 동두천 미군기지가 떠난 자리에 가수 연습생과 지망생 등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남 지사는 "과거 홍대 앞 거리처럼 요즘 동두천에는 인디밴드가 하나둘 몰려들고 있다"며 "자생적으로 만들어지는 생태계에 정책을 통해 힘을 실어줘 더욱 활성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양주·포천 지역에도 섬유업체들이 몰려들면서 자생적으로 섬유산업단지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남 지사는 이 단지를 북한의 개성공단과 연결하거나 디자인을 접목해 동대문 같은 패션단지로 만드는 구상도 하고 있다. 남 지사는 "인프라 확충과 규제 합리화 등이 포함된 북부 10개년발전계획으로 통일시대에 대비한 중추지역으로 개발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부 개발을 위해서는 규제 합리화가 시급하다는 게 남 지사의 결론이다. 남 지사는 "경기도가 가진 권한과 규제를 시군으로 분산하고 중앙정부에 규제 합리화를 설득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규제를 단번에 푼다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해결이 곤란하다"며 "연천군 같은 낙후된 일부 지역을 우선 수도권에서 제외하는 등 단계적으로 규제를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환황해권 시대의 중심지로 부상한 서해안을 신성장 거점으로, 자연자원이 풍부한 동부지역은 친환경 생태관광·레저벨트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남부는 제2, 3의 판교테크노밸리를 조성해 우수두뇌 중심의 최첨단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복안을 내놓았다.
남 지사는 정부의 각종 복지사업 확대에 따른 예산 부담으로 지자체의 재정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예를 들어 최근부터 지급된 기초연금의 경우 정부추진 사업이지만 지자체가 부담해야 하는 비율은 30%다. 남 지사는 "복지사업 매칭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8대2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대3 정도로 확대해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도 이 비율을 7대3 정도로 되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던 만큼 조속히 지방세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지사는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해 의료관광 클러스터를 조성, 메디컬 한류붐을 일으키겠다는 구상도 가졌다. 그는 "세계 의료관광시장 규모는 2004년 400억달러에서 2012년 1,000억달러, 2015년 1,300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국은 인프라 미비 등으로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며 "규제완화 등을 통해 의료관광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금지 조치 시행이 3주째를 맞은 가운데 남 지사도 해결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남 지사는 "광역버스 입석금지 대책은 이미 다 나와 있다"며 "서울과 경기 지역에 거점 환승센터를 만드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한마디로 버스허브를 만들자는 것이다. 수도권 각지에서 들어온 버스를 서울 도심 외곽에 조성된 허브(환승센터)에 모은 뒤 이곳에서 다시 도심으로 향하는 버스를 승객들이 1분에 1대꼴로 잡아탈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들면 해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남 지사는 지방정부의 외교활동에도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예고 없이 다가올 수 있는 남북한 통일에 대비해 외교적 우군을 구축하는 데 지방단체장들이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남 지사는 "지방정부의 역할 가운데 외국자본 유치도 중요하지만 미국이나 중국·러시아·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들과의 외교활동도 매우 중요해지는 시대가 왔다"며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얽혀 6자회담 당사국과 원활한 관계를 맺어두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 지사는 최근 지방외교 강화를 위해 미국을 방문, 테리 매콜리프 버지니아주지사와 샤론 블로바 페어팩스카운티 의장을, 워싱턴DC에서는 로버트 메넨데즈 연방 상원 외교위원장과 에드 로이스 연방 하원 외교위원장 등 주요 정치인들과 만나는 등 지자체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다양한 외교활동을 펴 눈길을 끌었다. 남 지사는 "미국은 전통적 우방이고 혈맹이어서 외교안보에 가장 기본이 된다"며 "나아가 미국뿐 아니라 중국이나 러시아 등의 미래 유력 지도자들과도 소통을 열심히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남 지사는 미중러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유럽의 경제중심으로 급부상한 독일과 유럽 주요 국가들의 차세대 지도자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남 지사는 "병자호란이나 한일합병 등 과거 우리나라가 국난을 겪었던 시기를 보면 아시아 지역의 헤게모니가 바뀌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현재 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헤게모니 갈등이 있는 만큼 지자체들도 나서 외교역량을 강화하는 게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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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은 카페… 공관은 게스트하우스… "소통·개방의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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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오철수 사회부장(부국장대우) csoh@sed.co.kr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