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용품 제조업체인 B사는 주로 대형마트를 통해 자체 브랜드상품(NB)을 판매해왔다. 하지만 얼마 전 B사가 거래하던 대형마트로부터 더 이상 제품 입점이 어렵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통보 받았다. 해당 대형마트가 자체 브랜드상품(PB) 비중을 늘리면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B사 제품이 매대에서 자리를 비워주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대신 B사는 해당 마트로부터 PB제품 아웃소싱 생산을 제안 받았다. PB제품은 B사의 기존 판매가격 보다 30%가량 낮은 수준에 제품이 판매되기 때문에 마진율에서 10~15%가량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 B사의 한 관계자는 "마진에서 생산원가와 인건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다"면서도 "대형마트와 관계를 고려해 PB상품 생산을 거절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대형 유통점들이 최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자체 브랜드 상품(PB)이 중소 제조기업 제품의 설자리를 빼앗고 있다. 유통사들의 PB제품이 늘어나면서 기존 납품 중소기업들의 판로를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마트 중 1위 기업인 이마트의 경우 지난 2007년 10월 5개 브랜드 3,000여개였던 PB상품 비중이 현재는 19개 브랜드 1만8,000여개 제품으로 확대됐다. 회사는 또 올해 연말까지 PB상품 비중을 25%로 확대하고, 오는 2014년에는 이를 전체 판매상품의 35~4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편의점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내 대표 편의점 체인 중 하나인 GS25는 전체 상품 중 PB상품 비중을 올해는 27%, 내년에는 31%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최근 대형유통사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이마트의 관계자는 "PB상품을 NB상품 대비 20~40% 가량 저렴한 가격에 공급해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려는 취지"라며 "아울러 중소 제조업체에게도 (PB를 통해) 사업진출 기회를 제공하고 판로를 확대해준다는 차원에서 유통업체별로 그 규모가 매년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소 제조업체들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각 대형유통사별 PB상품 확대로 판로 확보기회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동시에 PB상품의 외주 물량 역시 중소 제조업체들을 '대형 유통사의 생산공장으로 전락'시키는 동시에 20~40%에 달하는 납품단가 인하 압박으로 수익성마저 보전하기가 어렵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또 PB상품제작 의뢰 역시 어느 정도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중견 제조업체 위주로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는 주장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충분한 진열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기존업체들이 PB브랜드 생산까지 도맡아 인지도가 없는 중소업체들은 설 자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형유통사에 PB상품을 외주 제작하는 중소 제조업체의 브랜드와 유통사 브랜드를 '병기'하는 방식을 권장하고 있다. 이미 롯데마트에서는 일부 PB제품에 대해 해당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 역시 강제 사항은 아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PB상품 브랜드 병기 문제는 개별 법인의 자체 마케팅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사실상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유통망이 앉고 있는 병폐를 해소하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중소기업들의 브랜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김익성 중소기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브랜드 파워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의 경우 대형 유통사들에 대한 협상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라며 "프랑스 보르도와인이나 이탈리아 베네통의 사례처럼 중소 제조업체들이 공동 브랜드를 만들어 경쟁력을 키워 나가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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