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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위기극복의 현장] 대우자동차
입력1998-09-23 18:18:04
수정
2002.10.21 22:37:16
09/23(수) 18:18
지난 8월3일 월요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테이블 양쪽으로 앉아있는 사람들은 긴장한 모습이 역역했다. 이번에는 꼭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굳은 결의를 보이고 있는 듯했다.
바로 대우자동차 임금 및 단체협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강병호 사장, 이은구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사대표들은 벌써 2개월째 이런 자리를 갖고 있다. 24번째 교섭이었던 이날은 원래 회사전체가 여름휴가를 갈 계획이었지만 교섭을 마무리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휴가도 미뤄놓은 상태였다.
신문지면에는 연일 현대자동차가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파업과 휴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고용조정이 법제화된 이후 처음으로 맞는 대기업 노사협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당연 모두의 관심사였다. 게다가 구조조정을 진행중인 한국이 과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가질수 있을까 하는 외국인들의 눈도 의식해야 했다.
이런 관심은 당연히 대우자동차에도 쏠리고 있었다. 현대 못지않은 대규모 사업장인데다 다른 계열사들의 지표가 되는 교섭자리였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처럼 양보없는 대립으로 공멸의 길을 갈 것인가. 다행히 회사측과 노조측은 「고용안정보장」과 「고통분담」에 어느정도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떤 비용을 얼마나 줄여나갈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서로가 최종 입장정리를 위해 몇번씩 정회가 거듭됐다. 오전부터 시작한 회의는 늦은 오후로 흘러가고 있다. 강병호사장과 이은구위원장이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나눈다. 자리에 앉아있거나 서서 교섭현장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드디어 대화를 통한 임금 및 단체협상이 타결된 순간이었다. 회사는 절대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노조는 임금동결과 상여금삭감, 복리후생비 절감을 통해 고통을 나누겠다고 선언했다.
姜사장은 『고통분담을 통해서 고용안정과 회사의 생존기반을 마련하자는 호소를 노조측이 받아들여줘 고맙다』고 인사했고 李위원장은 『지금은 노조원들의 고용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인만큼 실리를 택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후 실시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협상안은 72%라는 역대 최고의 찬성율을 기록했다.
이날 협상에 들어가던 심정을 姜사장은 『두가지를 생각했다. 경영자로서 회사의 생존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과 한편으로는 직원들의 안정이었다』며 『위기를 극복하려면 전 직원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고용이 불안하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어렵다고 보았다』고 술회했다.
李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대립과 반목으로는 역사상 최대의 위기라는 IMF를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보장을 확답받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도 『고용안정을 위해 내놓아야 했던 우리측의 고통분담안은 하나하나가 모두 선배들이 피를 흘리면 쟁취해낸 것들이었다. 이것들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 미안하고 괴로웠다』고 말했다.
이런 「대타협」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올해 1월에 사장으로 부임한후 姜사장은 회사가 IMF를 핑계로 노조활동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오해에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교섭기간 내내 수출물량을 따내기 위한 해외출장 기간을 제외하고 일일이 교섭에 참석해 노동조합을 설득했다.
노조측도 선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며 조합집행부들이 생산현장을 돌아다니며 조합원들을 설득했다.
회사는 화장실 타월과 식당 냅킨까지 없애면서 비용절감만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고, 노조 집행부도 정시출근 등 솔선하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노조원들의 지지를 얻었다.
회사와 노조가 머리를 맞대고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들의 위기극복 사례를 같이 연구하고 해결방안을 찾아나선 것도 대화에 도움을 주었다.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노사가 공유한 것도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기반이었다. 姜사장은 부임해 우선적으로 노조위원장과 집행부 간부들에게 회사현황과 전망을 자세히 설명했다. IMF직후에는 재무담당 임원이 노조대위원 대회에 참석해 급변하는 경제상황과 회사전망을 설명하기도 했다.
직원수가 2만명이나 되지만 두달에 한번씩 공장별로 전직원을 모아놓고 경영실적을 설명하며 회사가 나갈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는 가운데 노사모두 공감대를 만들수 있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었다.
95년말부터 상호신뢰에 기초해 생산적이고 협력적인 새로운 노사문화를 구축한다는 「신노사문화 운동」도 밑거름이 되었다.
대우가 25년만에 국내 승용차시장 1위자리에 올랐던 것도 이런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92년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기도 했었다. 미 제너널모터스(GM)과 결별한 후 라노스·누비라·레간자를 연달아 출시하기까지 고통도 많았다. 하지만 대우는 경영환경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전직원이 함께 어려움을 나누면 극복할 수 있다는 공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노사 대표가 마지막 협상을 끝내면서 밝힌 심정에서 이는 잘 나타난다. 姜사장과 李위원장은 모두 『최종 합의문구를 정리해서 조인식을 갖고 교섭대표들과 악수를 나눌때의 기쁨을 잊을 수 없다』며 『노사관계는 서로를 격려하면서 같이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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