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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인,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 제자였다"
입력2006-01-03 07:18:48
수정
2006.01.03 07:18:48
박태상 교수 "도시샤大 유학 때 배워"
'향수'의 시인 정지용(鄭芝溶ㆍ1902-?)이 조선민예연구가인 일본의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ㆍ1889-1961)의 제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학평론가 박태상 방송대 국문학과 교수는 3일 "지난달 18일 일본 교토(京都)도시샤(東志社) 대학 교정에서 열린 정지용 시비 제막식에 참석했다가 하타 에이지(八田英二) 학장이 이런 사실을 언급했다"면서 "귀국 후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정지용이 유학했던 시기와 야나기 교수가 강의했던 시기가 일치했다"고 말했다.
정지용 시인은 섬세한 언어구사를 통해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며 '향수' '압천' '바다'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1930년대 말부터 이태준 이병기 등과 함께 잡지 '문장'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 청록파를등단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근대시의 뿌리를 구축했던 그는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일제시대 한국 지식인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일본의 민예운동가이자 종교연구가였던 야나기 무네요시의 제자였고, 미학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그동안 국내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다.
박 교수는 "하타 에이지 학장은 시비제막식에서 '정지용 시인이 도시샤 대학에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연구자로 저명했던 야나기 교수의 영문학 강의를 수강했고,블레이크를 주제로 졸업눈문을 썼다'고 소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시 조선의 전통공예를 일본에 소개했던 야나기 교수는 한편으로는조선지배를 강화하는 일본을 통렬히 비판하고, 조선인들에 대한 깊은 배려를 보였다"며 "기독교주의, 국제주의, 자유주의를 교육의 중심이념으로 삼은 도시샤 대학의학풍을 배경으로 정지용 시인은 야나기 교수와 기타하라 하쿠슈(1885-1942) 시인과만남을 통해 작품세계의 숭고함을 높여갔을 것"이라고 하타 학장의 기념식 축사를전했다.
박 교수는 "정지용 시인의 유학기간에 야나기 교수는 도시샤 대학의 정식 교수가 아니라 출강자 신분이어서 그동안 두 사람의 상관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라며 "정지용이 유학했던 1924-29년에 야나기 교수는 도시샤 대학 영문학과에 출강하며 휘트먼과 블레이크의 강의를 담당한 사실을 일본학자 사나다 히로코(眞田博子)의 최근 정지용 관련 박사논문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정지용은 블레이크 시 5편과 휘트먼의 시 12편을 번역 소개한바 있다. 박 교수는 정지용의 졸업논문 'The Imagination in the Poetry of WilliamBlake'도 야나기 교수의 권유로 썼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박 교수는 "정지용은 번역시와 동시까지 포함해 모두 140여 편 가운데 '압천' '향수' 'Dahlia' '바다' '말' '카페 프란스' 등 빼어난 작품 20여편을 도시샤 대학재학중에 창작했을 정도로 일본유학시절은 그의 생애에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초기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쓴 정지용이 상고주의, 정신주의의 전통으로 회귀하고 산수시, 자연시를 썼을 뿐 아니라 다수의 시론을 발표한 것은 야나기교수의 미학이론에 영향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1913년 도쿄제국대학 철학과를 나와 유럽에서 종교철학을 연구한 뒤 귀국해 도요(東洋)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 전통도자기와 공예품에 간심을 가졌던 그는 1924년 서울에 조선민속미술관을 설립해 이조미술 전람회와 이조도자기 전람회를 개최했으며, 1936년에는 일본 도쿄에 일본민예관을 설립했다.
그는 한국의 미술에 나타난 선적인 요소와 백색에서 '비애의 미'라는 한민족 특유의 속성을 찾아내 '조선의 미'를 말할 때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이 같은 그의 초기 조선미학관에 대해서는 시비가 없지 않으나 자민족 중심주의에 빠지지 않고조선, 대만, 오키나와 문화를 나름대로 존중한 민예운동을 펼친 것은 후대에서 높이평가받고 있다.
일제의 문화동화정책과 관련해 '광화문 철거 반대' '총독부의 석굴암 수리에 대한 비판의 글'을 썼던 그에게는 "조선사람보다 더 조선을 사랑했다"는 수식이 붙어다닌다. 이런 공로로 1984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최근 그의 '평화론'과 '복합의 미' 사상 등을 재조명한 '야나기 무네요시 평전'이 번역돼 나왔으며, 한일우정의 해를 계기로 지난해 9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야나기 수집품을 전시한 '반갑다! 우리민화'전이 열리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번에 정지용이 야나기 교수의 제자였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향후 미학적 연관성 등에 대한 본격적 연구작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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