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기업천국을 만들자/2부] 1. 경쟁력 발목잡는 규제

'보이지 않는 규제'가 더 문제다웬만한 기업사이에는 '투자를 하려면 공정거래위원회부터 찾아가라'는 불문율이 있다. 반드시 과천 정부청사를 방문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새 사업을 하려면 공정거래법을 한번쯤 뒤져봐야 한다는 기업인들의 자조적 푸념이다. L사의 신규사업을 총괄하는 P기획팀장은 "공정위의 재벌규제가 소유ㆍ지배구조를 건전하게 만들어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알듯모를듯한 모호한 규정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법집행은 문제가 아닐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공정위에 사전문의하거나 아니면 일단 투자부터 해놓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과징금을 내는 수밖에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최근 '핵심역량'에 대한 투자는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예외로 인정됐다. 그러나 출자총액제한의 예외로 인정되는 핵심역량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기준은 없다. 한계사업을 접고 정보기술(IT)분야 진출을 모색중인 A그룹 임원은 "공정위에 출자총액제한 위반 여부를 문의를 하자 '상식적으로 판단하라'는 퉁명스런 대답만 들었다"고 혀를 찼다. 그는 '신문고시'처럼 왜 '핵심역량고시'를 만들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비꼬았지만 기업은 정확한 기준을 마련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유명무실한 규제가 잔존, 기업구조조정에 되레 역행하는 경우도 있다. 정유회사들은 구조조정차원에서 유류운송차량을 외부용역으로 돌렸는데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행 옥외광고물표시법상 자기소유차량에 대해서만 로고를 붙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광고료를 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불법이라는 현실에 기가찰 노릇이다"고 하소연했다. 법과 제도는 공무원의 자의적 해석이나 간섭을 배제하도록 훌륭히 정비됐지만 말단 행정기관에서는 예전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규제혁파의 목소리는 높았지만 정작 체감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여기서 발생한다. 규제개혁위원위는 출범 당시 규제건수를 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98년8월 출범할 때 등록한 규제는 1만717건. 지난달말 현재 4,619건이 폐지됐지만 965건의 새로운 규제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건수위주ㆍ정부주도의 개혁과제 발굴로는 한계가 노출된 셈이다. 정작 문제는 10가지 규제중 9개는 풀었지만 나머지 1개를 풀지않아 규제완화의 효과가 반감되고 법과 규정에 없는 '보이지 않는'규제를 관행이라는 이유로 들이댄다는 것. 2차 기업규제개혁작업의 실무를 총괄하는 산자부 김용근 산업정책과장은 "제도는 잘 정비됐지만 일선 행정기관의 보이지않는 규제는 잡초처럼 퍼져있다는 기업인의 호소가 많았다"며 "실태조사기간중 기업인들은 주무관청의 눈치를 보느라 협조를 받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주택건축분야는 그동안 많은 규제해소 노력에도 실효성은 낮은 것으로 꼽힌다. D건설 K사장은 "서울의 한 구청은 아파트 사업승인을 조건으로 인근지역 주민동의를 의무화하는 바람에 가욋돈이 드는 것은 차지하고도 사업스케줄이 반년가량 늦어지는 바람에 수십억원을 손해봤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민원소지를 줄이라는 구청의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건축법은 물론 시조례에도 없는 이상야릇한 요구는 행정편의주의의 전형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주택산업연구원 이동성원장은 "주택사업자가 법에도 없는 도로나 공원등 주요 시설을 설치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기부채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시설설치나 비용부담을 사업승인의 조건으로 떠넘기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건수위주의 규제혁파작업이 진행된 탓에 반드시 필요한 규제도 폐지돼 시민불편을 초래하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진다. 신정부들어 의욕적으로 추진한 건축관련 규제완화로 골목길 다세대주택 건축을 양산하는 바람에 주차대란으로 소방차조차도 진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주택가 인근에는 러브호텔이 독버섯처럼 들어찼다. 산업현장의 안전관리는 중앙ㆍ지방정부의 중복규제가 여전하고 소형아파트 의무건립비율과 출자총액제한제도처럼 폐지됐다가 부활되는 규제도 적지 않다. 규제와 부패는 비례하기 마련이다. 국제투명성본부가 선정한 올해 한국의 반부패 순위는 42위. 싱가포르(4위)에 비할 수는 없지만 대만(27위)ㆍ말레이시아(36위)보다도 쳐졌다. 반부패 국가순위는 세계적 경제주간지 포브스가 5월 발표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순과 엇비슷하다. 조사대상 25개국 가운데 한국은 18위에 그쳐 대만과 중국ㆍ말레이시아보다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연구원 김도훈 선임연구위원은 "규제완화작업은 공직사회로부터 끊임없는 저항을 받고있다"며 "규제철폐가 공무원 밥그릇 빼앗기로 인식되고 규개개혁의 정신이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온갖 노력이 공염불에 그치기 때문에 행정시스템 개혁이 동반돼야 실효성을 거둘수 있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 이현우 산업부장(팀장), 정문재.고진갑.권구찬.최형욱.정승량.조충제.고광본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