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제품이라고 믿기 어려운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들이 대거 등장해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의 추격이 예사롭지 않아요.” 지난 3월 세계 최대의 정보통신 전시회인 ‘세빗(CeBIT) 2005’가 열렸던 독일 하노버. 삼성전자와 LG전자ㆍ팬택계열ㆍ레인콤 등 국내 주요 휴대폰 및 MP3업체들은 전세계 바이어를 대상으로 한 전시회임에도 불구하고 첨단제품의 전시를 꺼리는 표정이 완연했다. 진열대에는 최신 제품이 아예 전시돼 있지 않았으며 갖고 간 신제품들은 미리 약속한 해외 바이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중국업체들이 전통적인 강점인 가격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한국업체들의 첨단 모델을 본뜬 새로운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가전업체의 한 관계자는 “중국업체들이 무서운 기세로 약진하고 있다”며 “특히 중저가 디지털가전과 단말기 시장에서는 이미 위협적인 경쟁상대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잠재력만 인정받던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과 어느새 글로벌 시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시장 쟁탈전을 펼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첨단 정보기술(IT) 분야에서도 위협적인 수출 경쟁자로 떠올랐다. ◇‘메이드 인 차이나’, ‘IT코리아’ 텃밭서 격전 채비=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업체들이 디지털TV는 물론 휴대폰 등 각종 첨단제품에서 눈에 띄게 향상된 중저가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며 “아직 수준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이상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의 100대 수출품목 중 전기ㆍ전자제품을 중심으로 30개가 서로 겹치는 등 중국이 한국의 수출시장을 위협하고 있다는 무역협회의 조사결과는 단순 지표일 뿐 국내기업들이 해외에서 느끼는 ‘중국 경계경보’는 한층 심각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1~2년 새 단순 해외업체 유치 차원을 넘어 적극적인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한국과 기술격차가 큰 반도체와 휴대폰ㆍ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중국이 강력한 자본력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무기로 해외진출은 물론 해외기업 인수를 통해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며 “현 추세대로라면 엄청난 물량의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 한국기업들을 압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특히 거대한 내수시장과 급속한 경제성장을 통해 불어난 외화자본을 IT시장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며 “과거 한국이 중저가 제품을 무기로 수출시장을 공략해왔지만 앞으로는 중국이 이 시장을 장악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경계령’… 차별화로 승부한다=중국의 이 같은 무서운 기세는 한국의 유일한 성장 버팀목인 IT수출이 주요국 시장에서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업체들은 적극적인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는 등 수출시장 ‘수성’을 위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높은 품질과 디자인, 브랜드 인지도에 바탕을 둔 고급제품 시장을 타깃으로 삼아 저가의 범용 제품으로 대표되는 중국제품을 따돌리겠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저가공세가 거세지고 있는 가전제품과 핸드폰의 경우 국내업체들이 고가마케팅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 및 컴퓨터 관련 제품의 경우 인텔ㆍ마이크로ㆍ인피니언 등 선두업체들이 중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물량공세에 나섬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들 역시 현지 생산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3년 중국 쑤저우(蘇州)에 노트북PC 제조공장을 설립했고 하이닉스반도체는 올 상반기 ST마이크로와 합작으로 중국 우시(無錫)에 D램 및 낸드플래시메모리를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공장을 착공했다. 정부도 대책마련에 적극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정보통신부는 지난달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IT산업체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위해 주요 간부들과 재외공관 IT주재관, 국제기구 파견자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서 전략회의를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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