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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20> 학교 이데아(3·끝) 학교가 그들만의 城이어선 안된다





들어가기 힘든 곳일수록 내부자 간의 결속력은 강하다. 행여 흠이 있더라도 보듬어주고 소문이라도 날까 두려워 쉬쉬하곤 한다. 징계가 반드시 필요한 사안도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꾸짖는 시늉만 내고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아직도 그런 조직이 있냐고? 일부 ‘가족 회사’에서나 가능한 일 아니냐고? 미안하지만 요즘의 학교 얘기다. 교육현장에서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기분이 어떠신가. 나는 섬뜩하다.

실제로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은평구 충암고등학교의 급식사태는 교육현장의 부끄러운 민낯을 낱낱이 드러냈다. 충암고는 아이들에게 ‘급식비 안냈으면 먹지 마라’고까지 이야기했을 정도로 야멸찼다. 그런 이면에 충암고는 국가로부터 부당하게 지원금을 받아 자기들끼리 나눠 갖는 등 배임 및 횡령에 해당하는 부적절한 행위를 일삼았다.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만약 학부모와 아이들의 밥에 대한 분노가 없었더라면, 충암고 사태는 아직까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물론 충암고의 횡령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의혹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정부 돈은 ‘눈 먼 돈’으로 여겨온 뿌리 깊은 악습에서 기인한다. 충암고 급식 사태는 일선 중·고교에서 소비되는 식음료 유통에 대해 국가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기력했는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무상급식이냐, 유상급식이냐’ 공론만 일삼을게 아니라 이런 제도적인 누수를 막는 게 먼저다.

학교 급식의 식단도 문제다. 교원과 학생의 점심 메뉴를 차별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미리 비축해 둔 식재료를 소진하느라 균형잡힌 식단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학교에서 영양사는 있으나마나다. 식단을 짜기 위해 어떤 식재료를 살지, 비축은 어떻게 할지에 대해 영양사가 가진 권한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학교에서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데 양심껏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되겠나.



얼마 전 프랑스에서 지인이 왔는데 그 곳에선 일정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고 자격시험을 치르면 고등학교 교원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도 고등학교 교사 역할을 하던 적이 있단다. 계속된 지인의 말이다. “한 분야에서 박사 이상 수학한 사람들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깊다. 그래서 교육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더 많은 제도적 요소와 기술적 요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학교의 사회적 자본에 기여할 만한 여지도 훨씬 많다. 관료, 연구직, 기업 등 폭넓은 분야에 동료들이 진출해 있기 때문이다.” 가만 들으니 수긍이 갔다. 나 역시 학교라는 공간이 비민주적이고 교육 소비자의 선택을 존중하지 못한 데에는 ‘교사 자격증’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교대와 사범대 졸업장 그리고 임용고시로 대변되는 특정 교과 교사 자격증. 그것이 없으면 일선 학교에서는 수업은 물론이요 학교 운영과 관련된 행정업무에도 참여할 수 없다. 또 교사 자격증은 교원들의 학교 운영 참여권한인 동시에 스스로를 얽매는 속박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공무원 신분 때문에, 교장과 교감의 부하 직원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학교 안에 부조리가 있어도 개혁을 주장하고 변화를 일으킬 만한 운신의 폭을 갖기 어렵다. 오히려 국가의 ‘눈먼 돈’이 생길 때는, 주도세력과 파이를 나눠 먹음으로써 공범이 되기 십상이다. 전형적인 대리인 문제, 도덕적 해이 현상이라 할 만하다. 교사는 국민이 주인인 국가와 계약했지만, 국민은 ‘못된 교사’가 하는 일을 속속들이 알 수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남모르게 불합리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이렇듯 우울한 교육현장을 떠올리자니 차라리 프랑스처럼 외부의 박사 전공자들에게 교단의 문호를 개방하는 변화가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교 쇄신은 거저 되는게 아니다. 인적 자본을 개혁해야 가능하다. 우리는 학교에서 무슨 일만 터지면 그제야 교육부와 사학 재벌들을 때리고 지나가곤 하는데 그래선 곤란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학교를 어떤 사람들이 움직이는가에 달렸다. 왜 행정학 박사와 사회학 박사가 한국지리와 근현대사를 못 가르치겠나. 오히려 점점 다양해져 가는 대입 전형에는 풍부한 연구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아이들을 더 잘 지도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학교 혁신이 이뤄지려면 교사 역시 뼈를 깎는 변화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들만의 성을 견고하게 만드는 조직 이기주의와 자격증의 신화를 타파할 때가 됐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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