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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어메이징’ 그레이스 호퍼





여성이 37세 나이에 입대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다. 전역과 재입대를 거쳐 80세까지 근무가 가능할까. 미 해군 준장으로 예편한 그레이스 호퍼가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영역을 살았던 주인공. 군 복무를 통해 호퍼는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컴퓨터에 지능을 불어넣고 컴퓨터 언어를 개척한 선구자이며 ‘버그(Bug)’를 처음 찾아내 이름을 붙인 당사자다. 사망 이후에도 호퍼의 흔적은 군함에서 메달까지 곳곳에 남아 있다. 우리나라가 기상분석에 사용하는 슈퍼컴퓨터의 별칭도 ’호퍼‘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1906년 12월 9일, 뉴욕에서 중산층의 딸로 태어난 호퍼는 인생 전반부를 평범한 학자로 보냈다. 미국 뉴욕 바사대 수학과를 거쳐 예일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공부하던 24세에 동갑내기 영문학 교수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던 호퍼의 항로를 바꾼 것은 전쟁.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1943년 눈앞의 정교수 자리를 접고 미 해군 예비대 여군 지원단 장교로 군적에 올랐다.

몸무게 미달로 임관이 안 될 뻔한 호퍼는 함포의 정확도를 분석하는 연구팀에 배치받았다. 하버드대에 위치한 연구팀이 운용했던 초기 컴퓨터 ‘마크 Ⅰ’을 통해 컴퓨터의 가능성을 예견한 호퍼는 이혼(1945)도 마다치 않고 업무에 매달렸다. 컴퓨터의 고장을 의미하는 버그(bugㆍ벌레)와 문제 해결(debug)이라는 용어도 그가 밤낮없이 일하던 시절인 1946년에 만들어낸 용어다. 작동을 멈춘 컴퓨터 내부에서 진공관과 전선에 붙어버린 나방 한 마리를 제거했더니 기기로 제대로 돌아갔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호퍼가 무엇보다 열정을 쏟았던 분야는 언어 체계. 초고성능 계산기에 불과하던 컴퓨터가 호퍼의 선구적인 노력으로 명령어를 인식·분석하는 지능형 기계로 다시 태어났다. 최초의 컴퓨터 언어인 코볼의 공동 개발자이자 산파로도 불린다.



1966년 60세에 소령으로 만기 전역한 뒤에도 미 해군은 주요 과제가 있을 때마다 호퍼를 소집해 ‘3번 입대·3번 전역’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1986년 80세를 맞아 현역을 떠날 때 최종 계급은 준장. 호퍼의 준장 진급은 신고식(1983)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참석했을 만큼 국민적 관심사였다. 호퍼는 1992년 사망했어도 그의 이름은 거리와 기념관, 상과 메달에 녹아 있다. 미 해군이 자랑하는 고고도 미사일 요격용 SM-3 미사일을 실험했던 함정인 이지스 구축함 DDG-70의 함명도 ‘호퍼’다. 미국인들은 그를 여전히 ‘어메이징 그레이스(경배할만한 그레이스)’라는 애칭으로 기억한다.

호퍼가 받는 남다른 존경에는 국가에 대한 봉헌과 헌신, 과학자로서 업적 때문이지만 부럽다. 30대 후반의 말라깽이 주부를 장교로 받아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연구환경을 제공하는 환경이 부럽고 칠순의 나이를 넘겨서도 진급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근무 여건이 부럽다.

호퍼의 삶은 인간 사회의 최대 자산이란 바로 인간 자신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우리 사회도 그런지 의문이다. 우리는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을까. 여성에게 능력에 걸맞은 기회를 주고 있는가./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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