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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위기 극복 주역, 전세를 아십니까

집주인이 부실채권 일부 감내… 환란땐 경제 여파 최소화



전세제도가 시쳇말로 '동네북 신세'가 된 듯싶다. '주택 임대차 시장, 불안의 주범이다' '없어져야 될 구시대의 유물이다' 등 이곳저곳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저금리로 인해 빠르게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월세'는 선진 제도처럼 인식돼 가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한국에만 존재(?)한다는 전세 시스템은 낡은 제도로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전세가 우리나라 경제에 끼치고 있는 기여도를 생각한다면 곧 다가올 월세 시대 안착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타 다른 나라에 비해 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다는 점.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한국만의 독특한 전세제도가 한몫을 했다.

외환위기 당시 금융권의 부실채권 규모는 약 100조원까지 늘어났다. 만약 이 부실을 금융권이 고스란히 떠안았다면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다행인 것은 부실채권을 집주인, 즉 사적 영역이 상당 부분 감내한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전세제도가 있어서다. 전세보증금은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지급해야 될 돈. 한마디로 주택 부실채권을 집주인(임대인)과 은행이 공동으로 떠안는 구조인 셈이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외환위기 극복 과정을 다룬 민간 경제연구소 보고서를 보면 전세제도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융 부실채권을 임대인(사적 영역)이 일정 부분 감내한 점이 작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100조원의 부실을 금융권이 전적으로 부담했으면 경제가 아사 상태에 빠질 수 있었다. 임대인이 일정 부문 책임지면서 부실채권발 경제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전세는 한국판 모기지론의 역할도 해내고 있다. 모기지론은 집값의 80%가량을 대출받고 20%를 자가 비용으로 부담하는 구조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우리 정부는 선진국의 이 같은 모기지론을 도입하겠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문제는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른바 선진국형 모기지론은 아직껏 정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 예로 담보대출 비율도 정책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구조다. 집을 산다고 했을 때 얼마를 대출 받을 수 있을지가 그때그때마다 다른 구조다.

이 같은 국내 대출 시스템에서 전세는 모기지론이나 다름없다. 집을 매입할 때 전세보증금을 안고 살 경우 그 만큼 초기 투자비용을 줄일 수가 있었다. 전세는 내 집 마련으로 가는 징검다리이자 한국판 모기지론인 셈이다. 취약한 국내 주택금융 시장의 보완 역할을 해오고 있다.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가 늘면서 곳곳에서 월세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는 필요하다. 사실 월세는 임차인 입장에서는 주거비 상승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조만간 월급의 3분의1가량을 월세로 부담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이런 가운데 사라져 가는 전세에 대한 대안을 고찰해보자는 논의는 적다. 정부나 전문가들의 컨센서스가 전세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시각이다. 전세제도는 구시대의 유물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며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는 시스템인데 이점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월세 시대를 대비하자는 목소리는 이해가 가지만 전세가 축소될 때 이것이 주택시장과 우리 경제에 미칠 분석도 반드시 필요하다. 전세는 일종의 사적 금융인데 이것이 우리 경제의 취약한 부분을 지금도 보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져 가는 전세가 가져올 부작용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이종배 건설부동산부장 ljb@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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