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이화선의 우리 술의 멋과 맛] (9)그대는 아는가? 명주(名酒) 아와모리를

‘그대는 아는가? 명주 아와모리를(君知るや名酒泡盛)’이라는 글은 일본 발효·미생물학의 권위자였던 사카구치 긴이치로(坂口 謹一郞) 동경대 명예교수가 「세계(世界)」라는 잡지 1970년 3월호에 기고했던 논문 제목이다. 아와모리(泡盛)는 지금의 오키나와현(沖繩縣) 특산주로 일본인들이 크게 자부심을 갖는 증류주 중 하나이다.

오키나와의 푸른 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아와모리 소주는 일본 대표 증류주

오키나와는 종종 ‘일본이면서 일본이 아닌 곳’으로 소개되곤 한다. 사가구치 교수가 논문 서두에서 “바다에 의해 연결되고, 바다로부터 격리된 곳”이라고 기술했듯이 지리적으로도 일본 본토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오히려 남중국이나 동남아시아와 가까워 오래 전부터 본토와는 매우 다른 독특한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고려사절요에 고려 창왕 원년(1388)에 “유구(琉球)국 중산왕이 신하를 칭하며 왜구에 잡혀간 우리나라 사람들을 송환해 오는 동시에 진상품과 함께 사신을 보내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 조선 세조 13년(1467)에는 유구국왕에게 예물로 소주(燒酒) 30병을 하사한 기록도 있다. 려말선초(麗末鮮初) 기록 중 유구에서 올린 진상품 중 천축에서 만든 술 항아리(天竺酒甕)는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다. 이후 구한말 김홍집, 박영효 등 일본수신사 일행의 「수신사기록」에는 지황주(地黃酒) 감향포도주(甘香葡萄酒), 회회주(回回酒)와 함께 유구주(琉球酒)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다.

이처럼 오키나와는 우리와는 유구(琉球)왕조 시대부터 선린우호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구는 왜구들이 노략질을 일삼을 때에도 괴롭힘을 준 적 없이 우리와는 줄곧 평화를 유지해왔는데, 이는 영토는 좁고 생산물량이 적은 관계로 무역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고, 우리 또한 대마도를 중심으로 창궐했던 왜구들을 견제할 정치적 필요가 작용했던 이유가 크다.

아와모리 소주는 종류도 다양하다 .



#역사의 굴곡도 깊었던 아오모리

아와모리는 술을 가리키는 오키나와 방언이지만 일본에서 소주(燒酎)를 아와모리(泡盛)라고 부를 정도로 일본 최고의 명주가 된 데는 순전히 오랜 역사와 전통에 기인한다고 보기에는 짚고 가야 할 부분이 많다.

아와모리가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543년 명나라 때 책봉사로 파견된 진간(陳侃)의 『사유구록(使琉球錄)』으로 최근 중국과 일본의 조어도(釣魚島) 분쟁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는 문헌이다. 아와모리는 샴(Siam, 태국의 옛 명칭)에서 수입한 쌀로 빚은 청주를 증류한 술인데 류쿠왕조 때는 왕부의 엄격한 관리 하에 통제를 하였고, 에도 막부 때까지도 외국사신에게 보내는 예물로 귀하게 쓰였다.



그러나 메이지(明治)시대 때에 주조업자수가 그 조그마한 규모의 현(縣) 내에 무려 760여 호로 급증하고, 이후 주세법 개정과 불황으로 도산하여 1931년에는 82호로 격감한다. 특히, 태평양 전쟁 후 물자부족으로 옥수수, 초콜릿, 감자, 설탕, 이스트를 원료로 하면서 품질이 현저히 떨어진 술(雜酒)로 전락했다.

1950년 유구주조조합연합회가 발족되면서 원료로 태국 쌀 수입을 재개하고, 유구소주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판매와 유통을 맡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나 양주의 인기, 품질관리의 어려움 등 한계점에 봉착한다. 1963년 국세청이 각 양조업체의 출하액을 파악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동업자간 심한 가격 경쟁과 박리다매로 인한 탈세 등 문제점을 드러내며 다시한번 주저앉을 뻔했던 시장 사태가 일단 수습된다.

아와모리의 소주 공장.



#논문 한 편으로 일약 스타로 떠오른 名酒

그러나 아와모리가 실로 스타덤에 오르게 된 것은 지역민의 노력이나 관의 개입이라기 보다는 1970년 발효된 사카구치 교수의 ‘그대는 아는가? 명주 아와모리를’이라는 논문 한 편이다. 과학자이면서도 일본의 이백(李白)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문사였던 그는 이 논문에서 매우 유려하고 아름답게 때로는 감동적일만큼 아와모리 소주의 기원, 원료, 제성방법, 맛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사가쿠치 교수의 글을 계기로 전국에 아와모리 동호회가 결성되고, 현(縣)에서도 협동조합을 설립, 디자인과 상표를 새롭게 바꾸고 아와모리를 국제대회에 적극 출품한다. 특히 세계적인 인지도를 넓혀간 데는 술맛 보다는 몇몇 양조업체의 상표디자인이 국제적인 상을 수상하면서이다. 현재는 오키나와현(沖繩縣) 전체적으로 47개 주조소에서 독자적인 개성을 가진 5천여 종의 아와모리 소주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 술은 상고시대로 거슬러 가는 오래된 역사와 화려함을 구가했던 문화에도 불구하고, 일제 침탈 후 1세기 가량 단절됐던 가혹한 역사 속에서 잃어버린 것이 너무도 많아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이면서 일본이 아닌 곳, 오키나와에서 어쩌면 우리 술의 현재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보다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미래를 보는 듯하다. /이화선 사단법인 우리술문화원장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