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마지막 보루, 소방관. 이들의 24시간은 2016년 새해에도 변함없이 숨 가쁘다. 서울경제신문은 우리들의 안녕을 위해 연말연시의 설렘을 반납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소방서를 최근 방문, 이들의 구조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 생과 사가 갈리는 시간, ‘5분’
지난달 25일 오후 12시 39분 30초. 지하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소방대원의 귀에 요란한 출동 경보음이 들려 왔다. 영등포의 한 PC방에서 배가 부풀어 오른 50대 남성이 의식 불명 상태로 쓰러져 있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소방대원들이 용수철처럼 소방 차량에 뛰어 오른다. 구조팀이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12시 44분 10초. 구조 요청 전화가 접수된 이후까지 걸린 시간 4분 40초. 사람의 목숨을 가르는 골든타임, 5분을 가까스로 사수했다.
구조 대원들이 환자의 동공 상태를 확인한 뒤 곧바로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했다. 현장에서, 그리고 병원을 향하는 차량 안에서 쉴 새 없이 지속된 응급 처치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여전히 의식 불명 상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생과 사 사이를 넘나드는 시간이 흐른 뒤 환자의 최종 운명이 신길동 성애병원 응급실로 인계된 시간, 오후 1시 02분 10초. 이렇게 이들의 21분 40초가 흘러갔다.
△ 죽음의 위기 놓인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소방관에게 화재·구급·구조 현장은 매일 같이 부딪혀야 할 근무지이자 일터다. 이 곳에서 보고 듣고, 체험하는 모든 것이 이들의 기억 안에 머문다. 20여 년 동안 현장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김재근(52) 소방관은 “얼마 전 구조에 나섰던 환자가 병원 이송 중에 살려달란 말을 계속하면서 피를 쉴 새 없이 흘리는데, 마음이 무거웠다”며 아직도 종종 그날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김 소방관의 말처럼, 이들은 업무에서 사람들의 ‘일상사’를 보는 일이 별로 없다. 숨이 가쁜 사람, 이미 숨을 거둔 사람, 화재 속 잿더미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죽음의 위기에 몰린 사람들을 매일 같이 대면하고, 이들의 숨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직업 의식으로 무장된 소방관이라도 감내하기 쉽지 않다. 김 소방관은 “현장에 가면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의 모습들, 눈을 돌려야 할 정도로 처참한 모습들을 봐야 할 때가 있다”며 “스스로 마음 가짐을 단단히 하면서 극복을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지난 2014년 소방방재청이 국내 소방 공무원을 전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방관 가운데 외상 후 스트레스(PTSD) 장애를 앓고 있는 이가 전체 응답자(3만7,093명) 가운데 6.3%에 달했다. 일반인의 10배에 이르는 수치다. 우울증 역시 10.8%가 앓고 있어 일반인에 비해 5배에 이르렀고, 수면 장애에 시달리는 이들도 22%나 됐다. 지난 2008년 종로 소방서에서 관창수(호스 끝에 물이 나오는 금속노즐 부분을 잡는 고참급 소방관)를 맡던 시절 무릎 부상을 입은 적이 있는 손태용 소방관은 “그날 이후 정신도, 몸도 많이 힘들어져 병원 치료 도중 우울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