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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뒷문' 논란이 부러운 이유

美 '아이폰 잠금해제' 공방… 토론하는 민주주의 모습 보여

상대를 굴복시키려 압박하는 韓 일방통행 현실과 천양지차


'뒷문(back door)'하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먼저 든다. 뭔가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가리키는 게 보통이다. 국어사전에서는 '뒤나 옆으로 난 문' '어떤 문제를 정당하지 못한 방법이나 수단으로 해결하는 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나온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뒷문은 구린듯한 뉘앙스가 풍긴다. '뒷문이 열렸다'는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고도 들락거릴 수 있음을 뜻한다. '대학을 뒷문으로 나왔다'거나 '직원을 뒷문으로 뽑았다' 역시 대동소이하다. 바둑에서는 '변에 형성된 널찍한 집모양의 한쪽이 터져 있어 침입하기 좋은 곳'을 뒷문이라고 한다. 어감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요즘 미국에서 '뒷문' 논란이 거세다. 한쪽에서는 이번 한 번만 '뒷문을 만들라'고 다그치고 다른 쪽은 '절대 안 된다'고 버티고 있다. 아이폰 잠금 해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애플과 미국 연방수사국(FBI) 간 갈등 얘기다. 테러범이 사용하던 아이폰의 잠금장치를 풀어달라는 FBI의 요구에 애플은 그럴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국가 안보와 사생활 보호라는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한 모양새다. 사태전개는 점입가경이다.

1라운드는 FBI가 이겼다. 캘리포니아주 연방지방법원이 "애플이 FBI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이 열흘 전 이를 취소해달라는 재정신청서를 제출하며 2라운드가 시작됐다. 페이스북과 구글·왓츠앱 등 내로라하는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애플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확전양상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잠금 해제 프로그램이라는 뒷문을 만드는 것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이다"고 했고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골치 아픈 전례를 만드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브래드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MS)사장은 "지옥 길은 뒷문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연이은 테러공포에 불안해하는 여론은 아직 애플에 부정적이다. 얼마 전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설문결과 51%가 애플이 아이폰 잠금장치를 풀어줘야 한다고 답했다. 해제에 반대하는 응답은 38%였다. 양측이 강(强)대 강(强)으로 맞서고 있어 연방대법원까지 가서야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양 진영이 물러서지 않는 이유, 특히 IT 업계가 뒷문 봉쇄에 합심해서 나선 데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프라이버시권을 앞세우고 있으나 철통 보안을 내걸고 추진 중인 각종 사업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 중국 등 신시장을 영영 놓칠지 모른다는 절박감 등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핀테크나 커넥티드카, 소비·유통시장에서의 O2O(Offline to Online) 서비스 등 IT 융복합 산업의 핵심이 보안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우려는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국가 안보와 프라이버시권 모두 양보할 수 없는 가치여서 연방대법원에서 어떻게 가닥이 잡힐지는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논쟁이 미국만의 일일까. 우리나라도 지난해 불거진 카카오톡 감청 논란 등으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필리버스터로 번진 테러방지법 찬반의 쟁점도 따지고 보면 국가안보냐, 개인 프라이버시가 우선이냐다. 어느 쪽이 옳다고 섣불리 단정하기 어려운 난제임에 틀림없다. 지금 미국에서 '뒷문'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법정 다툼까지 들어간 것은 그만큼 예민한 사안이라는 얘기다.

미국에서 이 같은 대립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결판나는 경우는 드물다. 의회 청문회가 열리고 법원에서 여러 증언이 계속된 후 새로운 법이나 제도를 만드는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아 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법정 싸움도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을 통해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한마디로 시끌벅적한 민주주의다. 소통과 토론보다는 압박을 통해 완승해야만 만족하는 우리의 현실과는 차이가 많다. 미국의 뒷문 논란이 흥미진진한 한편으로 부러운 이유다. shim@sed.co.kr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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