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년, 일거리를 한아름 안고 지방 출장을 가게 된 회사원 김 과장. 과거였다면 이동하는 동안에도 일을 하거나 혹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기차나 비행기를 이용했겠지만,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김 과장은 곧장 서류를 안고 자신의 자율주행차(self-driving car)에 탑승한 뒤 목적지를 입력했다. 그리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편안하게 업무를 보는 동안 자동차는 스스로 목적지까지 이동한다.
다가올 미래의 청사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자율주행차이다. 운전자가 브레이크나 핸들, 가속 페달 등을 제어하지 않아도 도로의 상황을 파악해 자동으로 주행하는 기능을 갖췄다.
안전은 자율주행차를 질주하게 만드는 가장 큰 동력원이다. 세계보건기구 최근 통계에 따르면 매년 교통사고로 124만 명이 죽는다. 해마다 중국에서 27만 명, 인도에서 23만 명, 미국에선 3만여 명이 숨진다. 2014년 한국에선 5,869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자율주행차는 교통사고 사망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기술이다. 교통사고의 90%는 사람의 조작 실수로 인한 사고이고 10%가 도로나 기계 장치 결함이 원인이다. 자율주행차는 사람처럼 졸음운전이나 음주운전이 없다. 스마트폰이나 바깥 경치에 한 눈을 팔지도 않는다. 테슬라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는 지난해 “앞으로 사람이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는 것은 불법화될 것이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교통사고로 인한 보험금 등 경제적 피해도 대폭 감소한다. 컨설팅회사인 매킨지는 미국에 자율주행차가 도입되면 매년 1,900억 달러(약 228조원)의 경제적 효과가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휴식이나 생산적 활동의 시간이 된다. 미국의 경우 하루 50분의 자유시간이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됐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오는 2035년이면 세계 자동차 판매량 25%가 자율주행차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자율 주행차 기술은 어디까지 왔고, 이로 인해 우리의 일상생활은 어떻게 변화할까.
업계에서는 2020년을 자율주행 자동차 역사의 시작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 경쟁에서 가장 앞선 업체는 단연 구글이다. 구글은 지난 2010년 자율주행 자동차 관련 센서 등 부품기술 개발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일본산 자동차에 카메라와 GPS, 각종 센서를 장착해 구글의 자율주행 자동차 초기 버전을 제작했으며, 2014년 12월 이 같은 기술을 활용한 시제품을 공개하기도 했다.
구글의 자율주행 자동차 지붕에 탑재된 센서 장비는 ‘라이더(LiDAR)’라고 부른다. 원격 레이저 시스템이 빼곡히 들어가 있는 구글 기술의 핵심이다. 음파 장비와 3D 카메라, 레이더 장비도 포함돼 있다. 라이더는 마치 사람처럼 사물과 사물의 거리를 측정하고, 위험을 감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각 센서의 역할은 모두 다르다. 감지할 수 있는 거리도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레이저 장비는 사물과 충돌해 반사되는 원리를 이용해 거리를 측정한다. 360도 모두 감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고, 1초에 160만번이나 정보를 읽는다. 또, 전방을 주시하기 위해 탑재된 3D 카메라는 30m 거리까지 탐지하도록 설계됐다. 이밖에 GPS와 구글지도 등 다양한 장비와 기술이 탑재돼 있다.
그래픽 처리 장치(GPU) 기술 전문업체로 잘 알려진 미국 엔비디아도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 연구에 적극적이다. 엔비디아는 독일의 자동차 제조업체 아우디와 손잡고, 자동차에 적용할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기술은 주로 그래픽 처리 기술과 관련이 깊다. 차량에 12개의 카메라를 부착해 자동차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고, 자동차 내부에 초소형 이미지 프로세서를 탑재해 이미지를 분석한다.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에서 카메라는 눈 역할을, 프로세서는 두뇌처럼 작동한다.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CES) 2015’는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체의 스마트카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독일 자동차업체 BMW는 전기차 ‘i3’에 자동주차 기술을 탑재했다. 차량에 장착된 4개의 레이저 스캐너가 주변 환경을 탐지하고 자동차가 장애물과 충돌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장착했다. 스마트워치와 연동하는 자율주행 기술도 주목할 만하다. 스마트워치를 착용한 운전자가 스마트워치를 활용해 멀리서 자동차를 부르면, i3 자동차가 미끄러지듯 달려온다. 장애물이 있어도 자동차 스스로 운전대를 조작해 피할 수 있다.
벤츠도 CES 2015에 참여해 자율주행 자동차 ‘F015’를 소개했다. 자동 주행 모드를 선택하면 운전대는 대시보드 속으로 밀려들어가 운전석이 뒷좌석과 마주 보게 되는 모양으로 바뀐다. 벤츠는 F015에 적용한 기술을 활용해 오는 2020년까지 고속도로에서 자동으로 주행하는 자동차를 개발할 계획이다.
스웨덴의 볼보는 자석을 활용한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을 실험 중이다. 도로에 자석을 설치하고, 자동차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기술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묘사한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과 가장 근접한 방식이다. 볼보는 지난 2014년 진행한 시험 주행에서 100m 길이의 도로를 만들었다. 자석이 도로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차선 역할을 한다. 실험 결과 차량의 차선 이탈 오차가 10cm 미만이었다는 게 볼보의 설명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11월 국내 최초로 서울 영동도로에서 자율주행 장치를 장착한 제네시스(EQ900) 차량으로 도로주행을 했다. 실제 도로에서 주행 차선 유지, 서행 차량 추월, 기존 차선 복귀 등의 기술을 선보였다. 정부도 2월부터 외국처럼 자율주행차가 실제 도로를 주행할 수 있도록 임시운행허가제도를 시행했다. 시험운행 구역은 경부고속도로 1개 구간과 수도권 5개 구간 총 319km다. 현대차가 이미 신청한 상태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앞으로 20년 이내에 무인자동차가 상용화할 것으로 예측하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우선 반드시 차량에 장착해야 하는 스캐너는 약 9,000만원, 센서는 1억 원을 훌쩍 넘는 고가다. 테슬라의 전기차 가격이 10만 달러(약 1억 2,000만원) 수준인 것을 감안 했을 때, 무인자동차의 가격은 이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센서 등 고가 장비의 공급이 늘면서 가격이 연간 30%씩 떨어지는 만큼, 판매가도 시간이 지나고 기술 수준이 진전되면서 함께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병도기자 d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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