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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 가전업체들이 잇달아 중국 기업의 먹잇감이 되며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 일본의 대표기업 도시바는 대규모 회계부정 사태가 촉발한 경영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색가전사업부를 중국 메이더그룹에 넘기는 방향으로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5일 보도했다. 대만 폭스콘(훙하이)에 매각될 예정인 샤프에 이어 도시바까지 중국계 자본으로 편입 수순을 밟음에 따라 지난 세기 일본이 장악해온 아시아 가전시장 재편에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신문에 따르면 도시바는 사업 구조조정을 위해 매각을 추진해온 가전사업부를 중국의 대형 가전업체 메이더그룹에 넘기기로 방침을 정했으며 현재 고용승계와 일본 시장에서의 제품판매 방식 등 세부 사안을 최종 조율하고 있다. 메이더는 올여름까지 도시바가 전액 출자한 자회사 도시바라이프스타일의 주식 대부분을 넘겨받는 방식으로 백색가전 사업을 인수할 예정이며 인수금액은 수백억엔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인수합병(M&A) 논의는 일본과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려는 메이더그룹과 회계부정을 계기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도시바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메이더는 앞서 도시바와 기술제휴 및 합작사 설립으로 에어컨 사업을 한 경험이 있어 인수 대상자로 낙점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데아(Midea)' 브랜드로 가전사업을 벌이고 있는 메이더는 지난해 글로벌 백색가전 시장에서 점유율 4.6%를 차지하며 중국 하이얼에 이어 2위에 오른 기업이다. 지난 2014년 가전사업 매출액은 2조7,000억엔(약 20조8,000억원)에 달했다.
도시바는 2014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에 가전사업에서 2,200억엔의 매출을 올렸으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시바의 백색가전 사업은 당초 일본의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 주도하에 샤프 백색가전 부문과 통합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돼왔다. 아베 신조 정부는 일본 기술의 해외유출을 막고 사업재편을 통한 국가경쟁력 확보를 명분으로 이 같은 안에 힘을 실어왔다. 그러나 파격적인 인수금액과 고용승계 조건을 내세운 폭스콘의 제안에 샤프가 넘어가면서 갈 곳이 없어진 도시바는 중국과 터키 등의 인수 후보자들과 다시 협상에 돌입, 결국 메이더와 손을 잡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계약이 성사될 경우 지난 7년간의 회계부정으로 만신창이가 된 도시바는 경영회생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시바는 지난해 불거진 2,300억엔 규모의 회계부정 여파로 이달 말 끝나는 2015회계연도에 7,100억엔의 대규모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캐논이 인수하기로 한 의료기기 자회사 도시바메디컬시스템스 매각으로 7,000억엔을 긴급 수혈하는 데 이어 구조적인 문제로 적자를 쌓아온 백색가전 부문까지 털어낸다면 비교적 빠른 속도로 경영을 재건할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일본 언론들의 분석이다. 이 밖에도 도시바는 후지쓰와 바이오(VAIO)를 상대로 노트북사업 매각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이달 초 매듭지어질 예정이던 폭스콘의 샤프 인수는 샤프 측이 급작스럽게 통지한 우발채무 문제로 최종 타결이 늦춰지고 있다. 폭스콘은 우발채무가 실제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샤프의 주거래은행인 미즈호·미쓰비시도쿄UFJ 등에 추가 자금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며 당초 1,000억엔이었던 두 은행 보유의 샤프 우선주 매입금액을 낮추는 방안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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