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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적극 행정이 '항명'인가



인터넷 포털에 '복지부동(伏地不動)'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연관 검색어는 공무원이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무원에 대한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인사혁신처는 이 같은 복지부동 공무원을 퇴출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했다. '소극적 행정'을 한 공무원을 최대 파면까지 가능하도록 징계 기준을 바꾼 것이다. 소극적 행정이란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국민에게 불편을 주거나 권익을 침해하고 국가 재정에 손실을 입히는 것을 뜻한다. 반면 적극 행정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실에 대해서는 징계를 감경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인 관광객 비자 수수료 면제 논란에 따른 외교부의 좌천 인사를 보면 과연 정부가 복지부동 공무원을 퇴출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시도하며 적극 행정에 나선 외교부 직원들에 대해 청와대가 '항명'을 했다며 좌천성 인사를 지시했고 외교부가 이를 실행했기 때문이다.

사건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난해 발발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해외 관광객 수가 급감하자 정부는 중국 등 외국인 단체관광객에 대한 비자 발급 수수료를 올해까지 면제하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취지는 좋았지만 비자 수수료가 임시직인 사증(비자) 심사 보조인력의 인건비로 지급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이 때문에 외교부는 보조인력들을 해고하기로 했다가 오히려 인력 부족으로 비자 심사기간이 지연되면 관광객을 쫓아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외교부 본부 예산을 배정해 급여를 지급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외교부가 청와대와 법무부 등에 비자 수수료 면제 연장을 재고해달라고 공문을 보냈는데 청와대에서 이를 '항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담당 국장과 심의관·과장을 강도 높게 조사하고 이들에 대해 좌천성 인사를 하라고 외교부에 지시했다고 한다.

최근 외교부가 단행한 인사를 보면 청와대의 지시를 성실히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재외공관장 내정설이 돌던 담당 국장은 한직으로 불리는 산하기관 경력교수로 나갔고 담당 과장은 지역국 과장으로 발령을 받았다가 일주일 만에 발령이 취소돼 외부 파견을 나갔다. 담당 심의관은 그 자리에 발령이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자리를 지켰지만 다음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외교부 담당 직원들은 비자 업무가 마비되더라도 대통령 지시사항이라 어쩔 수 없다며 나 몰라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한국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질 것을 우려해 적극 행정에 나섰다가 괘씸죄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청와대의 지시는 잘못된 것이라 해도 무조건 따라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당한다는 나쁜 선례가 됐다. 이를 지켜본 다른 공무원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역시 복지부동이 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는지.

노희영 정치부 차장 nevermind@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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