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파괴적인 과정이다. 인간의 체내 기능은 외부 환경에 맞서 매일같이 싸움을 벌인다. 진화적 관점에선 자연 선택을 통해 이런 고난을 견딜 수 있는 개체가 선택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없을까? 왜 늙는 것일까?
그동안 인간이 왜, 어떻게 노화하는지를 알기 위한 시도는 많았다. 1990년 생물학자 조레스 메드베데프는 300가지 이상의 가설을 종합하기도 했다. 앨라배마 대학 버밍햄 캠퍼스의 생물노화학자인 스티븐 오스타드 박사에 따르면, 그 중 가장 뛰어난 해설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번식은 유전자에 새겨진 명령입니다. 인간이 늙는 기본적인 이유는 인체를 완벽하게 수리하는 것이 자연의 큰 뜻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인체가 가급적 오래 번식력을 유지한 뒤 번식력이 사라진 후에는 쇠퇴하기를 바랍니다.”
오스타드는 인간과 포유류가 다른 요인에 의해 죽기 전, 얼마나 빨리 번식을 해야 하느냐에 따라 노화 속도가 결정될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동물은 덩치가 작을수록 살아가는 환경도 적대적이어서 단명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들쥐는 매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새끼를 낳아야 한다.
때문에 들쥐의 장기나 면역체계는 50년이나 사용할 필요가 없다. 반면 코끼리는 천적이 거의 없으므로 수 십 년이나 살 수 있다. 오스타드는 이렇게 말한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그게 동물들의 수명을 결정하는 요소입니다.”
동물로부터 배운다
동물의 평균 수명은 인간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각 종마다 수명을 결정하는 기전도 다르다. 하버드대 의대의 유전학자인 바딤 글래디셰프 박사는 “장수하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말한다. 동물들이 장수하기 위해 쓰는 방법을 알면 인간의 수명도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장시킬 수 있다.
브랜츠 박쥐
몸무게가 5센트 동전 만큼 밖에 안돼도 브랜츠 박쥐는 야생에서 최대 41년이나 생존한다. 지난 2013년 글래디셰프와 동료들은 성장 호르몬 반응을 조절하는 이 박쥐의 유전자가 다른 박쥐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다.
북극고래
최대 200살 이상 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극고래는 현재 알려진 포유류 중 가장 장수하는 동물이다. 지난 2015년 한 과학자 팀이 노화, 항암, 세포 주기 순환, DNA 복원에 관련된 북극고래의 유전자 변이를 발견했다.
벌거숭이 두더지 쥐
털도 없고 쭈글쭈글한 벌거숭이 두더지 쥐는 30살까지 살 수 있다. 어지간한 설치류의 몇 배에 해당하는 수명이다. 지난 2014년 리버풀 대학이 주도한 연구에서 이 쥐의 게놈이 항암 능력을 갖도록 변이되었음이 드러났다.
대양백합
연구자들이 지난 2006년 507살 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대양백합을 발견했다. 오스타드는 “그 나이를 먹고도 아직 살아서 심장이 뛰는 대양백합이 있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감탄했다. 그의 연구소는 지금 이 백합의 단백질이 그토록 오래 유지되는 비결을 알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히드라
민물 히드라는 이상적인 조건 하에서 무제한 수명을 누릴 수 있다. 줄기 세포를 거의 무제한으로 생산할 수도 있다. 독일 연구자들은 인간에게서도 발견되는 히드라의 장수 유전자가 이 줄기 세포 생산과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황혼기에 대한 기록들
더 많은 생일 파티를 즐긴다
1900년 47세였던 미국인의 평균수명이 지금은 79세로 늘었다. 이 같은 평균수명 연장에 큰 몫을 한 것은 영아사망률의 저하다. 100년 전만 해도 미국의 영아사망 확률은 10분의 1이나 됐지만, 지금은 170분의 1에 불과하다.
노년 수명 연장으로 인한 평균 수명 증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 차트는 65세를 맞은 사람의 기대 수명을 보여주고 있다. 차트에 언급된 4개국 모두 65세에서 10년 이상을 더 살 수 있다. 여성의 기대 수명은 남성보다 더 길다.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의 인구학자 앤드류 노이머는 그 원인을 남성이 여성보다 흡연과 음주를 더 많이 하기 때문이라 여기고 있다. 그럼에도 수 십 년 동안 남성의 평균수명은 여성을 많이 따라잡았다. 누구나 인생의 황혼을 더 오래 즐길 수 있게 된 셈이다.
“장수는 가장 흥미로운 연구 영역이에요. 인간의 거의 모든 측면을 계산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죠.”
-미 국립 노화 연구소 위니프레드 로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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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유전자 약 2만개 가운데 현재까지 알려진 노화 관련 유전자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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