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쉽지 않았다. 1991년 숙명여대 화학과 학사 과정을 마친 뒤 곧바로 미국 텍사스공과대학으로 건너가 컴퓨터를 활용한 분자 디자인 분야 공부를 시작했지만 프로그래밍은커녕 컴퓨터 자체를 다루는 데도 서툴렀다. 프로그래밍 설명서를 펴놓고 한참을 씨름하며 간단한 명령어 입력에 성공했고 점점 탄력을 받으며 복잡한 알고리즘도 척척 해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마침 2000년대 초·중반부터 전산화학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2013년 노벨상은 전산화학의 ‘티핑 포인트’였다. 마르틴 카르플루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마이클 레빗 스탠퍼드대 교수, 아리에 와르셸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컴퓨터 모델링을 활용한 화학반응 분석 기법의 기초를 닦은 공로로 그해 노벨화학상을 거머쥐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화학상위원회는 당시 노벨상 시상 연설에서 “화학과 생물·물리학의 경계가 사라졌으며 화학 시스템과 반응을 모델링하는 데 컴퓨터가 활용되고 이로 인해 화학과 일상생활 간의 접점이 넓어지고 있다”며 ‘전산화학 전성기의 개막’을 알렸다.
최근 컴퓨터 성능의 발달, 특히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컴퓨터 스스로 분석 결과를 내놓는 인공지능(AI) 기술인 머신러닝(기계학습)이 발전하면서 전산화학의 입지는 더욱 커지는 추세다. 함 교수는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움직임과 변화는 매우 역동적이어서 인간이 그 규칙이나 양상을 모두 잡아내기 어려운데 컴퓨터는 이를 가능하게 해준다”며 “우리 연구실은 전산화학에 열역학을 접목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함 교수는 융합에 대한 소신 역시 밝혔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융합이 되려면 각 학문 분야 모두에 깊이가 있어야 한다. 표피적인 지식으로는 융합을 통한 획기적인 성과가 나오기 힘들다”며 “연구실에 있는 학생들에게도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면 화학뿐 아니라 물리·생명과학과 코딩까지 관련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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