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통령 예비경선을 위해 투표소로 향하는 유권자들은 여러 경제적, 사회적 이슈들을 고려해 한 표를 던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 외에도 유권자들이 염두에 둬야 할 사안이 또 있다. 후보들이 얼마나 과학을 이해하고, 존중하는지가 그것이다. 대통령의 과학적 식견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에 무지한 후보가 당선된다면 온실가스 배출저감이나 기상이변, 해수면 상승 등의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지역사회와 국가경제가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그릇된 정보는 국민 여론에도 영향을 준다. 실제로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연구팀이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2011년 미 대통령 예비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한 후보가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인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의 안전성에 관해 사실과 다른 발언을 했을 때 이를 지켜본 많은 부모들은 HPV 백신이 단기적인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착각했다. 다행히 접종을 기피하는 상황으로 번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과학은 당파 싸움의 대상이 아니다. 이론을 검증하여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지식을 사실에 기반해 정립해 나가는 체계적인 과정이다.
과학적 진실은 정치적 영향과도 무관하다. 유권자들도 이 점은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2015년 2,000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대다수는 과학을 공공정책적 문제로 인식하는데 동의했다. 공화당원, 민주당원, 비(非)당원을 막론하고 말이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잘못된 과학지식을 믿고 있거나 고의적으로 왜곡해 전파할 경우 나타난다. 2008년 민주당 후보시절의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은 모두 백신이 자폐증의 원인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표명했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며, 두 후보는 그 같은 의견을 정정했다. 올해는 공화당 후보들이 기괴한 주장들을 펼치고 있다. 아메리카대학의 정치행위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수헤이 교수도 이를 지적한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에게 집중하면 공화당 인사의 과학에 대한 무책임한 발언 빈도가 늘고 있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 때문에 부모들은 자녀의 백신 접종을 중단하거나 접종시기를 조정해야 한다.
1. 과학적 사실
백신(예방주사)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음모론이 지금처럼 널리 퍼지게 된 계기는 과학저널이 제공했다.
정확히 말해 1998년 영국의 의학전문지 ‘더 랜싯(The Lancet)’에 게재된 한 논문이 최초 진원지다. 앤드루 웨이크필드라는 의사가 대표저자였던 이 논문에는 홍역-볼거리-풍진(MMR) 혼합백신을 접종받은 아이들 중 8명이 접종 1개월 내에 자폐증 증상을 보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하지만 이 연구에는 대조군이 없었고, 방법론에도 문제가 많았다. 이에 더 랜싯은 2010년 논문 철회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백신과 자폐증 사이의 다양한 가설을 연구한 논문이 수십 건 발표됐다.
필라델피아 아동병원의 소아과 의사이자 전염병 전문가인 제프리 거버 박사와 폴 오피트 박사는 2009년 이러한 논문 20건을 검토한 결과를 공개했다. 두 사람의 결론은 이랬다.
‘역학적, 생물학적 연구 모두 백신의 자폐증 유발을 증명하는데 실패했다.’
2014년 시드니대학 연구팀도 125만명 이상의 아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MMR이나 일반적 백신들이 자폐증과 유관하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올해 공화당 예비경선 중 도널드 트럼프와 크리스 크리스티, 심지어 의사 출신인 랜드 폴과 벤 카슨 후보마저 부모들이 자녀의 백신 접종 여부와 방법, 시기를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백신과 자폐증이 무관하다는 연구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백신접종시기의 조정은 자폐증 발병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지난해 자폐아 1,929명을 포함한 아동 9만5,727명의 의료 데이터를 분석한 논문이 발표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형제자매 중 자폐아가 있는 아동은 그렇지 않은 아동보다 MMR 백신 접종률이 낮았다. 그러나 자폐증은 유전적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자폐아의 형제자매들은 자폐증에 걸릴 위험이 애당초 높다. 백신 접종과 상관없이 말이다.
반면 백신 접종을 기피했을 때의 위험은 잘 알려져 있다. 오피트 박사 또한 백신을 접종하지 않거나 연기하는 것은 아이가 질병에 걸릴 수 있는 기간을 연장할 뿐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폐증은 전염병이 됐습니다. 25년 전, 35년 전만 해도 통계자료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이젠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백신 접종에 찬성합니다. 다만 지금보다 더 적은 양을, 더 긴 기간 동안 접종하길 원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2015년 9월 16일 공화당 후보 TV 토론회에서
■ 아이들에게 HPV 백신을 접종해선 안 된다.
2. 과학적 사실
지금껏 알려진 HPV(인유두종 바이러스)는 100종이 넘는다. 이중 40여종은 생식 기관에서 발견되며, 성적 접촉을 통해 전염된다. 감염되면 자궁경부와 음경, 항문, 인후(목구멍)에 암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자궁경부암의 핵심 원인 인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런 HPV백신을 아동기에 접종해야할 표준 백신의 하나로 지정하고 있다. 남녀를 불문해 11~12세에 접종받아야 하며, 혹여 시기를 놓쳤다면 늦게라도 접종 받을 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HP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칼리피오리나 후보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고 이런 발언을 했다.
“학교에선 이렇게 말하지 못할 겁니다. ‘당신의 아이가 전염성이 없고, 백신 접종이 꼭 필요하다고 입증되지도 않은 질병에 걸렸기 때문에 학교에 등교할 수 없다’고 말이에요.” 이는 사실과 다르다. HPV는 분명한 전염성 바이러스다.
또 HPV 백신 접종의 최적기는 아이가 성적욕구를 갖기 이전이며, 그래야 완전한 면역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존스홉킨스대학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원의 소아과 전문의 마리아 트렌트 박사의 설명이다.
“HPV는 흔한 질병입니다. 미국 인구의 무려 4분의 1이 보균자죠. 많은 사람들이 첫 성경험 때 HPV에 감염됩니다. 그럼에도 아직 상당수의 부모들이 HPV 백신을 접종받으면 이른 나이에 활발한 성행위를 할 것이라고 판단, 접종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대학 LA 캠퍼스 산하 암 예방관리 연구센터의 2013년 연구에 의하면 그런 믿음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
■ 정신질환이 총기범죄를 유발한다.
3. 과학적 사실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면 정치인들은 그 원인을 총기법이 아닌 정신질환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작년 한 해에만 도널드 트럼프, 마르코 루비오, 벤 카슨 등의 후보들이 그런 모습을 보였다. 작년 10월 오리건주 엄프콰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총기 난사가 일어난 뒤 루비오 후보는 NBC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는 두 가지 이슈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신질환입니다. 이 문제를 더욱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개인으로서의 우리가 난폭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듀크대학 의대의 의료 사회학자 제프리 스완슨 박사는 폭력적 행위 중 정신질환이 원인인 것은 전체의 단 4%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특히 CDC 산하 미 국립보건통계센터의 연구에 의하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벌어진 미국 내 총기 살인사건의 5%만이 정신 질환자의 소행이었다. 때문에 스완슨 박사는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을 정신질환에서 찾는 것은 왜곡된 시각이라고 지적한다.
“대다수 정신질환자는 폭력적이지 않으며, 그렇게 될 일도 없습니다. 몇몇 정신질환 가해자의 사례를 일반화시켜 확대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정신질환자와 관련된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고 말한다. 자해 및 자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2002년 세계보건기구(WHO) 연구팀의 조사 결과, 자살을 시도한 사람의 무려 90% 이상이 진단 가능한 수준의 정신장애를 앓고 있었다. 같은 해 미 국립정신보건원(NIMH)이 발표한 보고서에도 자살 희생자 5명 중 1명이 사망 1개월 내 정신적 문제로 상담을 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버드 부상 통제 연구센터가 내놓은 통계자료를 볼 때 총기 보유를 규제할 경우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 총기 보유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총기를 이용한 자살률도 높게 나타났던 것. 연구팀은 2003년 예비군 병력을 절반으로 줄이고, 자택에 보유토록 했던 소총을 회수한 스위스의 대응을 좋은 사례로 들었다.
■ 과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태아 조직을 불법 구입하고 있다.
4. 과학적 사실
태아 조직에는 여러 인체 장기로 분화시킬 수 있는 줄기세포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른바 태아 줄기세포다. 가소성이 탁월해 암과 에이즈 같은 감염성 질병이나 발달장애 등 다양한 의학연구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올 1월 의대와 전문기관, 연구소 등 미국 내 59개 의학단체가 미국 의과대학협회를 통해 태아 조직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을 정도다.
예컨대 태아 줄기세포를 활용하면 쥐의 몸 속에 인간과 유사한 면역체계를 만들어 병원균의 인체 공격 방식을 연구할 수 있다. 실제 인간을 감염시키지 않고도 그와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 과학계가 이러한 태아 조직을 구하는 합법적인 루트는 유산 또는 낙태를 한 산모의 자발적 기부다. 과학 발전을 위해 기부를 결정하는 산모들이 있다고는 해도 매번 구하기 쉬운 물건은 결코 아니다. 워낙 많은 기관이 기부 과정에 관여하고 있어 논란이 많은 탓이다. 그런데 작년 가을 칼리 피오리나와 테드 크루즈 후보의 발언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두 후보가 낙태 반대 운동가들이 제작한 동영상을 보고 플랜드 패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라는 기관의 태아 조직 공급 절차를 문제 삼았던 것이다. 그 영상에는 이 기관의 직원들이 태아 조직을 불법 판매하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 텍사스주 대법원은 플랜드 페어런트후드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동영상 제작자들을 정부 기록 위변조 및 태아 조직 불법 구입 시도 혐의로 기소했다.
현재 플랜드 페어런트후드는 캘리포니아주와 워싱턴주에서만 태아 조직 기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공보 담당 에릭 페레로 부사장에 따르면 기증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태아 조직 인수자가 부담하는 것이 상례였다고 한다. 이는 합법이지만 작년 9월부터 이 회사는 모든 비용을 자체 부담하고 있다.
태아 줄기세포의 공급원 감소는 연구자들에게 슬픈 소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는 이렇게 전했다.
“태아 조직 구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현재 태아 줄기세포로 전염병을 연구 중에 있는데, 태아 조직이 들어올 날만 애타게 기다리죠. 저희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플랜드 페어런트후드는 공소 사실을 인정한 거나 다름없어요. 영리를 위해 태아의 신체 일부를 판매하는 행위는 징역 10년형의 중범죄입니다. 그들이 자행한 모습들이 담긴 동영상이 있습니다.” - 테드 크루즈, 2015년 9월 공화당 후보 TV토론회에서
■ 1970년대 과학자들은 지구 온도가 낮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과학계가 지구온난화를 믿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5. 과학적 사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과학자들은 지구 대기권에 들어 있는 다양한 혼합물들이 기후변화의 원인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중 무엇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지 못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온실가스에 의한 지구온난화를 예견했고, 또 다른 과학자들은 대기 중의 에어로졸이 햇빛을 반사시켜 지구가 냉각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지구온난화보다 지구냉각화의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의 연구가 더 많았다.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연구팀이 1971년 발표한 논문도 그중 하나다.
특히 과학 기자들이 지구냉각화를 더 선호하면서 그에 관한 내용들이 언론에서 많이 거론됐다. 1973년의 파퓰러사이언스도 그랬다. 바로 이것이 테드 크루즈나 마이크 허커비 같은 후보들이 지금도 과학계가 지구냉각화를 지지한다고 믿는 이유로 보인다.
그러나 과학적 사실은 다르다. 2008년 미해양대기청(NOAA) 산하 국립기후자료센터(NCDC)의 토머스 피터슨 박사팀이 1970년대부터 발표된 과학 논문들을 검토, 지구온난화에 동의하는 과학자가 월등히 많음을 확인했다.
게다가 지구온난화를 입증하는 방대한 증거들에 비하면 지구냉각화를 설명해줄 증거는 보잘 것 없다. 2013년 유엔 산하 기후변화 정부간협의체(IPCC)가 9,200건의 동료평가(peer-review) 연구를 모아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그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비영리단체 버클리 어스(Berkeley Earth)의 지면 온도기록 전문가 지크 하우스파더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구냉각화 이론은 오늘날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그건 과거에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으니 현대 물리학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소리예요. 과학은 새로운 지식과 이론의 검증을 통해 발전합니다. 과거의 그릇된 가설이 현재의 과학적 지식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 지구온난화가 사실이더라도 인간이 원인이라는 증거는 없다.
6. 과학적 사실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의 대기학자 벤 샌터 박사는 기후변화의 책임이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지구온난화에 더 중대한 역할을 했음을 데이터를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에게는 타임머신이 없기 때문에 인류가 등장하기 전 지구 기후의 변천사를 알수 없다. 하지만 기후 모델을 활용해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기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합리적 추정이 가능하다. 샌터 박사팀도 2013년 미 국립과학원(NAS)의 지원을 받아 위성 데이터와 기후 모델을 동원해 지구온난화에 미친 인간의 영향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리고 지구 대기의 변화는 태양 활동의 변동, 화산 폭발 등 자연현상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같은 해 20개의 기후모델을 가지고 대기권 각 층의 변화 패턴을 분석한 두 번째 논문을 발표했는데, 인간 역시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최종 결론이었다.
IPCC도 2013년 보고서를 통해 수백 건 이상의 논문들이 샌터 박사팀과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음을 알렸다.
그럼에도 젭 부시 같은 후보들은 기후변화에 인간의 영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언급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15년 5월 뉴햄프셔주에서도 “사람들에게 이 문제의 과학적 결론이 났다고 말하는 건 오만한 태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샌터 박사는 진짜 오만한 것은 제대로 된 이해조차 없이 과학을 무시하는 사람이라 강조한다.
“과학계는 수십 년간 지구온난화의 원인과 인간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지금까지 관측된 내용에 기반한 최고의 설명은 인간이 기후변화에 강력히 연관돼 있다는 겁니다.”
“저는 지구온난화의 원인과 관련해 인공적 요인과 자연적 요인의 비중을 과학이 정확히 규명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는 난해한 문제입니다. 과학적 결론이 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오만합니다. 스스로에게 정직해지세요.” - 젭 부시, 2015년 5월 20일 뉴햄프셔주 선거전에서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BY BROOKE BOR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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