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신촌·홍대·대학로 등을 중심으로 방탈출카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방탈출카페는 정해진 시간 안에 암호를 풀고 밀실을 빠져나가는 일종의 신종 게임이다.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5월 서울 강남에 처음으로 문을 연 지 1년도 안 돼 전국 50여곳으로 늘었다. 스터디도 예전처럼 한 데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기 보다는 ‘캠스터디’라는 새로운 방식이 뜨고 있다. 각자 자신의 방에서 화상 웹캠 시스템을 이용해 서로가 공부하는 것을 감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철저하게 파편화되고, 스스로를 가둬두는 청춘들을 보면서 기자의 가슴 한 켠은 서늘해진다.
사회 양극화, 취업대란, 저임금, N포세대 등 극단적인 상황에서 ‘금수저·흙수저’론이 나왔고, “이런 나라는 차라리 망하는 게 낫다”며 ‘헬조선’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청년들은 ‘태후’ 유시진 대위의 ‘조국 사랑’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노력하면 잘 될 것’이라는 부모들의 애정 어린 충고도 공자님 말씀에 불과하다.
기성 세대는 청년들에게 왜 도전하지 않냐고, 왜 행동하지 않냐고 다그친다. 정신 상태가 나약하며, 체념도 쉽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구체적인 대안 제시도, 기득권에 대한 양보도 없이, 내가 했으니 너희도 하면 된다고 윽박지른다. 이렇게 청년들과 멀어지고 있던 찰나에 우리는 20대 총선을 맞이했다. 전문가들은 보수적인 중장년 유권자 표심과 젊은층의 정치 무관심이 결국 여당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19대 총선과 비교해 50대 이상 유권자는 1,821만여명으로 245만여명이나 늘었고 30대 이하는 60만여명이 줄어든 1,500여만명에 그쳤다.
그런데 ‘역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졌고, 여당 심판론에 더해 야당 심판론까지 대두되며 20년 만에 3당 체제가 탄생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총선에서 20대의 높은 투표율이 판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미국 정치학자 애덤 셰보르스키는 민주주의에 대해 “서로를 죽이지 않고 갈등을 처리할 수 있는 체제”라 명명했다. 그래서 그는 선거를 ‘종이 돌멩이(Paper Stones)’에 비유했다. 이번 선거 역시 거리에서 돌멩이로 표출될 법한 청년의 분노가 ‘표심’로 분출됐고, ‘종이 돌멩이’를 통해 분노를 실천했기에 정치 지형이 뒤집힌 것이다. 물론 ‘선거 반란’이 젊은 세대의 정치적 자각을 일깨웠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20대 청춘들이 던진 ‘종이 돌멩이’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본다.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존재의 완성 단계에 이를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존재의 완성 단계에 이른 양 살아간다. 늙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 아직 젊다면 한 번밖에 오지 않으며 되돌릴 수 없는 삶이 소중하다면, 그 삶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부단히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19세기 러시아 혁명가 피터 크로포트킨의 ‘청년에게 고함’은 2016년 ‘헬조선’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도 유효한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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