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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도의 톡톡 생활과학]유전자 가위... 축복인가, 재앙인가

한 연구원이 가위로 유전자 일부를 잘라내는 모습을 가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제공=네이처




지난해 과학기술계 최대 화두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였다.

세계 양대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지난해 12월 각각 ‘올해의 10대 획기적 과학 연구 성과’(Breakthrough of the Year 2015)와 ‘과학계 뉴스인물 10명’을 발표하면서 1순위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와 크리스퍼로 인간 게놈 편집 실험을 해 논란을 일으킨 황쥔주 중국 중산대학 연구원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네이처는 이어 3월에는 ‘유전자 편집 시대의 시작(Dawn of the gene-editing age)’이라는 주제 아래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다양한 연구들을 소개했다.

‘유전자 편집 시대의 시작’을 주제로 다룬 네이처 3월호 표지. /사진제공=네이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가이드RNA가 표적 유전자를 찾아가면 그 곳에서 ‘카스9(CAS-9)’라는 단백질 효소가 DNA염기서열 부위를 절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크리스퍼는 박테리아가 가지는 회문구조를 뜻하는 말인데 외부 침입자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여 빠르게 제거하는 박테리아의 원리를 이용한 기술이다. 회문구조란 앞에서 뒤로 읽으나 뒤에서 앞으로 읽으나 똑같은 낱말이나 숫자 또는 문장을 말한다. 크리스퍼는 ‘제3세대 유전자 가위’로 불리며 최근 생명과학 연구실에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예전에도 물론 유전자 가위 기술이 있었지만 모두 단백질이 유전자를 찾아내는 정찰병이었다. 단백질은 덩치가 컸지만 크리스퍼는 훨씬 작은 RNA가 DNA를 찾아서 바꾼다. 그래서 과거 유전자 하나를 잘라내고 새로 바꾸는 데 수개월에서 수년씩 걸리던 것이 크리스퍼를 통해 며칠이면 되고, 한 번에 여러 군데의 유전자를 동시에 손볼 수도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모식도. 가이드 RNA가 목표 DNA의 염기서열을 찾아 결합하면 제한효소인 ‘카스-9’(Cas-9)이 그 염기서열을 절단한다. /사진제공=IBS 유전체교정연구단


유전공학분야의 떠오르는 기술 ‘유전자 가위’는 가위라는 말처럼 동식물 유전자에 결합해 특정 DNA 부위를 자르는 데 사용하는 인공 효소이자, 유전자 교정 기술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DNA의 특정 서열을 제거·수정·삽입할 수 있으므로, 문제되는 유전자만 잘라내고 새로운 유전자를 바꿀 수 있다. 난치병을 고치거나, 유전자조작식품을 만들거나 멸종 위기에 빠졌거나 멸종된 생물을 복원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어 지난 몇 년간 전 세계 과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4차 산업혁명으로 손꼽히는 ‘바이오 융합기술’에서 핵심적인 기술로 손꼽히며 과학기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전자 가위’가 연구되는 대표적인 곳이 신약개발 분야다.

국내 연구진이 지난해 피가 멎지 않는 혈우병 환자에게서 얻은 세포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고친 뒤 혈액응고인자를 만드는 혈관내피세포로 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과 김동욱 연세대 의대 교수, 김종훈 고려대 생명공학부 교수 등으로 이뤄진 국내 공동 연구진이 혈우병에 걸린 사람의 세포로부터 역분화줄기세포(iPS)를 만든 뒤 혈우병을 일으키는 원인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교정, 정상적인 세포로 분화시켜 혈우병에 걸린 쥐에 이식해 치료하는데 성공했다. 쥐의 꼬리를 잘라 인위적으로 출혈을 일으키자 이 세포를 이식받지 않은 쥐는 평균 65분 만에 죽은 반면, 정상적인 세포를 이식받은 쥐는 9마리 중 6마리가 평균 111분 생존했으며 나머지 3마리는 이틀 이상 생존했다.

에이즈 바이러스인 HIV가 수용체인 CCR5와 결합해 인간 면역세포에 침입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그림. /사진=구글


지난 4월 중국 광저우 의대 연구진은 수정란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해 에이즈를 발생시키는 인간면역결핍(에이즈) 바이러스(HIV)에 내성을 갖는 배아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26개의 인간 배아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 ‘혈액세포유전자(CCR5)’라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CCR5는 에이즈 바이러스(HIV)와 달라붙어 세포 안으로 HIV 바이러스를 나르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CCR5를 제거하면 HIV에 감염되지 않는다. 아직 장기간 추적 관찰 연구가 필요한 단계지만 치료법이 상용화되면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는 에이즈 환자의 치료는 물론 경제적 부담도 덜 전망이다. 이 때문에 독일 바이엘과 스위 노바티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등 다국적 제약사들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신약 개발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중국에서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원숭이의 자폐증을 치료하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농업, 축산업 등에서 동,식물의 품질을 개량할 수 있어 농축산업의 발전과 함께 미래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엠젠플러스는 미국 버지니아텍 이기호 교수팀과 공동으로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주요 면역관련 유전자를 완전히 제거시킨 형질전환 복제돼지를 생산했다. /사진제공=엠젠플러스


한미 합동 연구팀은 면역결핍 형질전환 복제돼지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 개발된 돼지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면역관련 유전자를 완전히 제거시킨 형질전환 복제돼지로, 인간과 매우 유사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어 줄기세포 치료 때 세포치료의 안전성, 만능성, 분화 가능성을 조기에 확인할 수 있어 치료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영국 로스린연구소 연구진은 크리스퍼를 이용해 바이러스성 질환에 강한 돼지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이미 수억 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거뒀다. 돼지의 감염과 관련된 유전자를 흑멧돼지의 유전자로 교체해 아프리카 돼지의 열병을 치료한 것이 대표적인 성과이다. 또 다른 연구진은 트리파노소마 병원균 저항성을 가진 소를 만들어 소의 수면병 문제를 해결했다. 전 세계 인구의 2%가 지닌 달걀 알레르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크리스퍼가 활용된다. 호주 연방과학원 연구진은 닭의 원시생식세포(정자나 난자 어느 쪽으로도 변할 수 있는 미성숙 세포)를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알레르기를 없앤 달걀의 개발 가능성을 열었다.

유전자조작식품(GMO)의 유해성 논란도 줄어들 것이다. 현재 만들고 있는 GMO는 식물 세균인 ‘아그로박테리움’을 활용해 외부 유전자를 식물에 인위적으로 삽입한다. 이 과정에서 수백, 수천 개가 넘는 외부 유전자가 삽입돼 안전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유전자 가위에 쓰이는 RNA는 오직 목표 DNA에만 상보적으로 결합해 불활성화시키므로 정확성 또한 뛰어나다. RNA를 도입한다는 점에서 GM기술과 달리 세포 내 DNA가 잔류 할리도 만무하다. 때문에 ‘유전자 가위’는 GMO의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또 품질 개량뿐 아니라 멸종동물들의 복원에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하버드의대 연구진이 이끄는 연구진은 인도코끼리를 변형해 추위에서도 잘 살아남는 코끼리를 만든 뒤 시베리아에 방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선 19세기에 소멸된 여행비둘기를 부활시키기 위해 박물관에 보관된 여행비둘기의 DNA와 현대 비둘기의 DNA를 비교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유전학이 극도로 발달한 디스토피아 사회 모습을 보여준 영화 ‘가타카’ 포스터 /사진=구글


지난해 4월에는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인간 배아의 DNA를 편집하는 연구가 처음으로 진행되기도 했다.황쥔주 등 중산대 연구팀은 인공 수정란의 빈혈 유발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꿔치기했다고 발표해 일부 과학자가 ‘크리스퍼 연구 중단(모라토리움)’ 선언을 촉구하는 등 논쟁을 일으켰다. 이런 가운데 올해 2월에는 인간의 수정란에서 유전자 일부를 잘라내고 편집하는 실험이 영국에서 승인됐다. 국가기관의 승인을 받아 공식으로 실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뇨병이나 암과 같은 유전성 있는 유전자를 제거한 ‘맞춤형 아기’를 생산함으로써 매우 건강한 인간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심각한 윤리 문제가 내재돼 있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해 4월 미국 재생의학을 위한 연합 의장인 에드워드 랜피어 박사 등 네 명의 저명한 과학자는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인간배아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고 네이처(Nature)지 기고를 통해 밝혔다. 미국 노벨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볼티모어와 폴 버그 박사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 “과학계가 기술과 윤리적 차원에서 우리 행동의 의미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지금은 유전자를 편집하기 전에 잠시 멈춰 생각할 시간”이라고 호소했다. 저명한 생화학자이자 국제줄기세포연구학회(ISSCR) 회장인 루돌프 재니쉬도 타임 기고를 통해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했다.

이런 가운데 2006년 유럽연합(EU)은 유전자 편집 염소를 이용해 항응고 단백질이 포함된 우유 생산을 허가했으며, 200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이를 허가했다. 양 기관은 지난해 콜레스테롤 약물에 유전자 편집 닭이 생산한 달걀을 포함하는 것을 허가하기도 했다.

자연 임신이 아닌 인공 수정으로만 자식을 출산하도록 엄격히 통제하는 디스토피아적 인류의 미래를 다룬 SF영화 ‘가타카(Gattaca)’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알파고가 인공 지능에 대한 우려를 가져왔듯, 유전자 가위 역시 유전자로 모든 게 결정 나는 사회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기술들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인간들의 가치관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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