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출자를 사실상 거부했다. 담보가 없는 지원은 ‘손실 최소화’라는 중앙은행의 원칙에 위배 된다는 게 이 총재의 설명이다. 이 총재는 또 2009년 은행자본확충펀드처럼 한은이 담보를 바탕으로 은행에 직접 대출을 해주는 방식이 중앙은행의 기본 원칙에 부합한다며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총재는 5일(현지시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방문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중앙은행의 기본 책무는 손실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라며 “(국책은행 자본확충의 경우) 회수할 수 있는 확실한 형태가 있든가, 아니면 출자 형태를 안 취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은인 지난 4일부터 국책은행 자본확충협의체를 출범시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출자 등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 총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사례를 들어 ‘손실 최소화’라는 중앙은행의 기본원칙을 설명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에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 게 미국 연준인데 AIG나 GE에 출자가 아닌 대출을 해준 것을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중앙은행의 기본 책무 때문”이라며 “AIG 대출 줄 때는 전 재산을 담보로 했다”고 말했다.
재정과 마찬가지로 발권력도 국민의 부담인 만큼 이 같은 중앙은행의 원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쓰여야 한다는 게 이 총재의 설명이다. 그는 “자본확충펀드 방식은 한은이 할 수 있는 일반적인 통화정책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구조조정과 관련한) 금융시장 불안에 대해 한은이 경험도 있고 법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것 다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국책은행 출자 대신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이겨내기 위해 2009년 12월 조성된 은행자본확충펀드를 대안으로 내놨다. 은행자본확충펀드란 한은이 시중은행의 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고, 은행은 그 자금으로 자본확충펀드를 만들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은행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의 펀드다. BIS비율이 높아진 은행은 이를 바탕으로 중소기업 신규대출 확대하거나 기존 대출 만기 연장, 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신규자금 대출 등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었다.
구조조정과 관련해 한은이 쓸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도 밝혔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 의결만 거치면 되기 때문에) 상황 판단해서 움직이는 게 빠르다”며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가 소화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경우 회사채 지원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또 금융중개지원대출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지원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야 할 일 있다면 역할 마다치 않겠다는 게 한은의 일관됨 입장”이라며 “금융안정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시나리오를 다 짜놓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총재는 ‘무조건’ 출자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구조조정은 주된 역할이 정부이고, 발권력을 이용한다면 납득할 만한 타당성과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 출자를 100% 배제한다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다는 점이 일단 납득이 되야 하고, 그다음이 손실 최소화의 원칙”이라며 “그 원칙에 따르는 안이 뭐가 있는 지를 협의체에서 논의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 같은 발언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다거나 논란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이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프랑크푸르트=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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