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친구들. 저는 이곳에서 공방장으로 일하는 빌리 아저씨에요. 아까 에이미 누나한테서 우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배웠죠? 아저씨랑은 지금부터 그 우유를 가지고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치즈를 만들어 볼거예요.”
지난 11일 전북 고창군 상하면 용정리. 서해안고속도로 고창나들목을 나와 차로 40여분을 더 달리자 상하농원을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널따란 주차장을 지나 농원 안으로 들어가자 체험교실에서 초등학생들이 치즈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개구진 표정을 가득 머금은 아이들은 실습 내내 치즈를 던지며 장난치기 일쑤였지만 농부 복장을 한 강사들은 놀이도 교육의 한 과정이라는 듯 아이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 광주에서 왔다는 주부 김소정(37)씨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상하농원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하루 학교에 현장체험학습을 내고 왔다”며 “대형마트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도 체험교실을 운영하지만 진짜 목장에서 실습해보니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까지 힐링이 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문을 연 상하농원은 이국적이라는 형용사가 부족할 정도로 독특한 풍광을 빚어냈다. 전통 한옥의 느낌을 철저히 배제한 건물 외관부터 벤처기업처럼 영어 명찰을 단 직원들까지 기존 체험형 테마농원과는 다른 색다름으로 가득했다. 9만9,000㎡(약 3만평) 부지 곳곳에 배어 있는 정성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이지만 그 어느 곳보다도 이질감 없는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선사한다는 게 상하농원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상하농원은 매일유업(005990)이 상하목장 인근에 조성한 체험형 농어촌테마공원이다. 2008년 12월 첫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6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애초 사업규모는 정부(농림축산식품부)와 지방자치단체(고창군)가 각각 50억원을 출자하고 매일유업이 100억원을 분담하는 200억원 규모였다. 하지만 공사가 진행되면서 당초 예산을 훨씬 넘어서자 매일유업이 170억원을 추가로 투자했다. 애초에 사업성을 바라보고 시작한 것이 아니어서 비용이 들더라도 제대로 된 체험형 농원을 선보이자는 김정완 회장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윤선중 상하농원 경영전략팀장은 “기존에도 지자체가 선보인 농어촌 테마파크가 있지만 대다수가 관광에 치우치거나 생산 위주인 경우가 많았다”며 “상하농원은 체험형 테마파크를 기본으로 하되 지역농가와의 상생을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삼았다”고 말했다.
상하농원은 국내 최초로 ‘한국형 6차 산업’을 사업모델로 내걸었다. 6차 산업은 생산(1차 산업)과 제조·가공(2차 산업)에 유통·서비스·관광(3차 산업)을 연계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개념이다. 소득 정체에 내몰린 농가에게는 판로를 열어주고 지역주민과 지자체에는 유통과 서비스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어 갈수록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우리 농어촌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꼽힌다. 지역사회의 일자리 창출과 운영기업의 매출 증대 등도 부수적인 효과다.
상하농원을 대표하는 공간은 4개의 생산공방이다. 빵·햄·과일·발효식품으로 구성된 생산공방에서는 상하농원이 위치한 고창 지역의 식재료를 전량 사용해 제품을 생산한다. 상하농원의 최우선 목표인 지역 농산물 활성화와 농가 수익 증대가 실현되는 최일선인 셈이다. 별도로 운영하는 파머스마켓은 고창뿐만 아니라 반경 100㎞ 이내 산지의 특산품을 판매하는 로컬푸드 유통창구다. 유제품뿐만 아니라 생선, 과일, 곡식 등 다양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체험형 테마공원의 장점을 극대화한 레스토랑도 3개(상하키친·농원식당·카페젤라또)나 된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음식은 모두 상하농원과 고창에서 자란 농작물과 특산품으로만 만든다. 카페젤라또에서 구입할 수 있는 ‘고창 청보리 아이스크림’이 대표적이다.
개장한 지 채 한달이 되지 않았지만 가족 단위 관람객을 위한 체험교실은 벌써부터 예약이 몰리고 있다. 직접 채소와 과일을 키우는 텃밭정원과 4가지 맞춤형 체험교실(소시지·빵·치즈·아이스크림)을 통해 수확부터 가공, 유통, 서비스에 이르는 전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매일유업은 상하농원을 설계하면서 일본 모쿠모쿠농장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 일본 중부 미에현 이가시에 위치한 모쿠모쿠농장은 일본 6차 산업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는 곳이다. 지난 1987년 축산농가 10여곳이 육가공 체험프로그램을 도입한 뒤 식당과 온천탕 등 휴양시설을 확대해 매년 50여만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80여개에 달하는 다채로운 체험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면서 지난해 매출 600여억원을 기록했다.
상하농원은 지역사회 일자리 창출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각 공방을 운영하는 공방장의 평균 연령은 30대 초반인데 모두 고창 인근에서 출퇴근한다. 내년 상반기 객실 30여개를 갖춘 숙박시설 파머스빌리지와 빌리지스파까지 완공되면 현재 53명인 정직원의 규모도 200여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매일유업은 올해 상하농원에 7만명이 방문해 매출 50억원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20년에는 연간 30만명을 유치하고 3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관람객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해외 관광객까지 유치해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겠다는 청사진도 내걸었다.
박재범 상하농원 대표는 “상하농원은 단순 생산에 머물렀던 농업이 얼마든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며 “단순한 체험형 테마파크에 머물지 않도록 인터넷 판로 확대 등을 통해 상하농원에서 생산된 제품들을 전국적으로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창=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