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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영남권 신공항, 주판알부터 튕기던 정치 쟁점화의 비극?

/출처=이미지투데이




알랭 드 보통이 쓴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라는 에세이를 이번 주말 집어 들었다. 집필 동기가 순수하지만은 않은 책이다. 물류 중심지이자 서비스 도시로 거듭나려는 런던의 히드로 공항이 보통에게 저술을 의뢰했다. 공항 홍보를 위해서다. 보통은 대부분의 비즈니스맨들이 이야기하는 ‘경쟁력’, ‘효율성’ 같은 건조한 단어가 아니라 여행객들이나 승무원들, 창구 직원들 등을 직접 만나며 어딘가로 오가는 사람들의 서정을 담아내려 했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히드로 공항에 가면 보통이 묘사했던 것과 같은 낭만이 살아있을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실제로 공항 방문을 위해 영국에 가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하니, 보통의 저술이 지니는 광고 효과는 엄청난 셈이다.

글을 읽으며 요즘 한국 정가에서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영남권 신공항 문제를 생각해 봤다. 영남 지역에 대규모 물류를 소화할 수 있는 교통 중심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꽤 오래됐다. 필자는 2010년 경 故 남덕우 전 국무총리로부터 직접 ‘동남권 신공항’의 절실함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제조업 약소국이 되어 가고 있는 한국이 새로이 도약하려면 서비스 산업 선진화가 필요하고, 그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동북아 물류 중심지’라는 비전이 요구된다는 것이었다. 남 전 총리는 생전에 인천 경제 자유구역, 동남권 신공항, 북극해 전략과 같은 거시적인 비전들을 여럿 설계해 냈고, 실제로 많은 후배들이 정책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 중 인천경제자유구역은 당초 구상과 달랐지만 꽤 그럴듯한 도심으로 성장해 있다.

동남권 신공항의 가장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가 부산 가덕도였다. 항만과 항공을 하나로 잇고, 양산 물류 터미널을 통해 남동 공단의 각종 물품들을 자유롭게 실어 나르고 수출한다는 교통 중심지 전략 담론의 일환이었다. 故 남 전 총리와 항공학 전문가인 엄태훈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양산항이나 싱가폴 항만(port of Singapore)과 같은 물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부산 신공항이 매우 효율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대구와 밀양의 신공항 유치론자들이 발끈할 법하다. 일단 홍준표 경남지사는 ‘물 구덩이보다 맨땅이 낫다’고 말했다. 부산 가덕 신공항은 뻘에 위치한 곳이기에 건설 비용도 많이 들 거라는 논리다. 대구·경북 지역도 신공항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은 4월 총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에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3월31일 부산을 찾아 “(부산에서) 의원 5명만 뽑아준다면 대통령 임기 중 신공항 착공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라는 발언으로 맞서는 모양새였다. 특히 새누리당 내에서는 신공항이 어디에 갈 것이냐를 두고 엄청난 내분이 예상됐다. 상황이 이러했기 때문에 21일 오후 영남권신공항 건설 백지화가 최선이라는 용역 결과가 주는 충격은 실로 엄청날 수 밖에 없었다.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결과에 증권가·정계를 포함해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하루 종일 술렁였다. 정치적으로는 부담을 덜게 됐다는 시각도 존재했다. 가덕도든 밀양이든 어느 한 곳이 선정되면 여권의 핵심 지지층인 영남이 두 동강 나는 건 뻔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감자’에서 ‘더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영남권 신공항. 정치적 쟁점화가 낳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국민들 눈에는 국가 물류와 국민 편의를 위해 당초 계획했던 공항 건설 자체에 대한 고민보다 정부가 정치적 주판알부터 튕기는 것처럼 비춰졌기 때문에 ‘표심을 의식한 선택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지역의 표도 놓칠 수 없다는 논리에 떠밀려 논란만 양산하다가 ‘신공항’ 자체가 무산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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