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한 여름 더위 날려주는 각 지방의 냉국수가 소개됐다.
7일 방송된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차가운 한 그릇의 유혹, 냉국수’ 편이 전파를 탔다.
밥이 주식인 우리나라 사람이 밥 못지않게 좋아하고 자주 먹는 음식이 국수다. 특히 여름 철, 간편하고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냉국수는 여름 별미이자 밥상 위의 고마운 친구다. 고된 일을 끝내고 후루룩 국수 한입을 먹으면 여름 더위는 물론 세상만사 걱정거리가 싹 사라진다.
경주 감포읍의 작은 해안 마을에도 여름이 찾아왔다. 동해안을 따라 조그마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선창마을에는 바다 일을 천직이라 생각하는 늙은 해녀들이 살고 있다.
호흡장치 없이 수심 10-20미터 깊은 바다에서 일해야 하는 해녀의 삶. 그 삶이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사는 것과 같다며 웃는 해녀들에겐 여름철, 없어선 안 될 음식이 있다. 바로 냉국과 냉국수다.
오랜 시간 물질을 하기 때문에 항상 입이 깔끄럽다는 해녀들은 늦은 점심이나 저녁을 국수로 때우곤 한다.
잠수복을 입고 무더위로 고생인 바다 안 해녀들은 물질을 끝내자마자 전날 만들어 놓은 우뭇가사리 묵을 콩물에 말아 먹는다. 시원한 우뭇가사리 콩국으로 정신을 차린 해녀들! 그제야 늦은 점심식사를 준비한다.
감포 앞바다가 내어주는 전복, 소라, 해삼과 말아먹는 물회 국수와 뜨거운 국물을 잘 마시지 못하는 해녀들의 몸보신을 도맡아 온 성게 콩나물 냉국까지 있다.
경남 진주에는 100년째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특별한 정미소가 있다. 장마에 떠내려간 앉은뱅이 종자를 보존하여 대를 이어온 91세의 김순이 어르신은 평생 정미소 기계 소리를 들으며 귀까지 어두워졌지만 국수 이야기라면 이야기꽃을 피운다.
시아버지에 이어 남편, 아들까지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3대에 걸쳐 국수를 뽑아온 김순이 어르신에게 국수는 어려운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정이며 가문을 이어온 전통, 지금까지의 생을 이어준 생명이다. 그런 시어머니의 곁에서 정미소는 물론 고생까지 물려받은 며느리 김기선 씨.
4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에 시집와 남편 얼굴보다 시어머니 얼굴을 더 많이 보고 살아 온 며느리는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밀 수확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진주의 여름, 고부의 손맛으로 만든 고소한 콩국수와 비빔국수, 과거 정미소 인부들의 대표 간식이었던 부푸리빵까지 있다.
스님들이 국수를 좋아하다 보니 절집에서 국수의 별명은 ‘승소(僧笑)’다. 국수 생각만 해도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는 것. 스님 세 명이 기거하는 작은 절 향운암의 명천스님에게 국수는 특별한 음식이다.
30여 년 전 성수스님 시봉시절 큰스님이 내걸었던 ‘프로젝트’는 장을 보지 않고 살기. 산천초목에 널려 있는 약초와 산나물로 끼니를 잇다보니 명천스님 눈에 띄는 온갖 것들이 식재료가 되었다. 매 끼니 색다른 맛과 향을 위해 지천으로 핀 꽃이며 열매를 이용했다는 명천 스님.
국수를 좋아했던 큰 스님을 위해 제철, 제시기에 나는 것들로 여러 가지 국수를 개발했다. 특히 여름에는 시원하게 칡잎으로 물김치를 만들어 김치말이 국수를 올렸다. 물이 스미지 않는 연잎을 널따란 국수그릇에 깔아서 은은한 연향을 풍기게 하려면 연잎이 가장 보드라운 7월 초가 제철이다.
국수와 함께 밥상에 올랐던 반찬은 독특한 향의 감잎전까지 있다. 기름에 노릇하게 구운 감잎전은 큰스님이 좋아했던 대표 메뉴였다고. 제철 열매인 매실과 앵두, 오디로 만든 과편까지!
각 지역에서 다양한 국수를 즐기는 동안 경북 영주 사람들은 얇은 면발이 아닌 투박한 메밀 묵채를 국수처럼 말아 먹는다. 무더운 여름에도 지난 추억을 별미 삼아 메밀묵 만들기가 한창인 여륵마을 어르신들.
오랜 세월 제 자리를 지켜온 맷돌에 메밀을 곱게 갈아 만든 메밀묵은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차갑게 식힌 멸치 육수를 붓고 조밥과 함께 먹으면 바쁜 농부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든든한 한 끼가 된다.
[사진=KBS 제공]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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