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IB 부총재는 우리가 미국의 만류를 물리치고 4조원의 분담금까지 내면서 어렵게 따낸 자리다. AIIB가 역내 인프라 투자에 나설 때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그런데도 정부는 홍 부총재의 돌발 휴직 이후 AIIB를 주도해온 중국의 선처에만 호소했을 뿐 안일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애써 따낸 부총재직을 걷어차 버리는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기획재정부는 지금도 우리 몫을 주장하고 있지만 후보자들마저 선임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한결같이 손사래를 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대국민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AIIB를 비롯한 국제 금융계에서 실추된 한국의 위상이다. AIIB는 후임자 인선 기준으로 ‘고도의 전문성과 직업윤리’를 제시했다고 한다. 산업은행 부실화에 대한 책임론에 휘말린 홍 부총재를 직접 겨냥했다는 점에서 국제적 망신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마당에 앞으로 국제금융계에서 어떻게 국익을 앞세운 요구를 제기하고 발언권을 행사할지 걱정부터 앞선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로 껄끄러워진 한중 관계에 불필요한 논란거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그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AIIB 사태는 인사 난맥상이 초래한 국제적 망신이다. 국민은 낙하산 인사가 어떤 참사를 초래하는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정부는 홍기택 선임부터 낙마까지 일련의 과정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관련자들을 문책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청문회를 열자는 정치권의 요구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에도 어물쩍 적당히 넘어간다면 현 정부는 나라 망신을 자초했다는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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