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팬이라면 ‘프로야구 선수협회 파동’을 기억할 것이다. 2000년 초 송진우(한화) 선수 등을 중심으로 프로야구 선수협회 결성 움직임이 나타났다. 협회는 1월 결성됐지만 각 구단과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아 선수들과 갈등을 벌였다. 협회의 주축 멤버였던 송진우 양준혁 마해영 박충식 최태원 심정수 등 6인이 12월 각 구단에서 자유계약공시로 공시되며 사실상 방출되자 갈등은 정점을 찍었다.
이처럼 구단과 KBO가 부정하던 선수협이 공식적으로 출범한 데는 ‘프로야구 선수협을 지원하는 의원모임’(이하 선수협 지원 모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한길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의 중재로 구단과 선수 간 갈등이 봉합됐는데, 김 전 장관에게 중재 압박을 넣은 것이 선수협 지원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모임은 그에 앞서 송진우·양준혁·심정수 선수와 조찬 모임을 갖고 관련 제도개선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여론 형성에 앞장서기도 했다.
선수협 지원모임은 그 면면이 화려하다. 여야의 대권 주자로 꼽히는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한나라당)을 비롯, 당시 초선 의원이었던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당시 자민련)도 여기에 참여했다. 변호사 출신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는 모임에서 법률 자문을 맡았다. 현재 당권 도전을 선언한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도 이름을 올렸다.
총 3개 당에 흩어져 있던 이들은 정쟁의 와중에도 사회적 약자였던 야구선수들의 인권을 위해 15년 전 이미 ‘협치’를 실현한 셈이다. 김부겸 더민주 의원은 서울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그때는 선수들이 약자였다”면서 “아무도 선수들의 권리를 보호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선수들이 스스로를 보호하자고 하니 여야 의원들이 나서서 도와준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김 의원은 “그때 내 기억으로 제일 인상 깊은 사람은 송진우”라고 말했다. 그는 “송진우는 함께 왔던 양준혁과 강병규한테 ‘앞으로 비싼 차 타고 다니지 말라, 명색이 선수들 권리를 찾기 위한 모임을 하는데 누구는 600만 원 받을 때 억대 연봉이라고 이런 차 끌고 다녀서 되겠냐’고 했다”며 “그래서 송진우라는 사람을 선수 이전에 인간으로 존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재까지도 이들의 행보는 당시 협치의 연장선 상에 있다. 김부겸 의원은 야당의 불모지였던 대구에서 최초로 당선된 야권 국회의원, 지역주의 타파를 상징하는 정치인으로서 ‘상생의 정치’를 내세운다. 그는 “상대편을 찍어눌러서 내 의지대로 끌고 갈 수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나는 일정 부분에서 여야가 대화하고 타협해야 할 게 많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어 “경제 문제든, 안보 문제든, 사회 문제든 한 정당이 감당할 수는 없다”며 “권력과 책임을 나눠야 공동체가 맞닥뜨린 과제를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경필 지사는 ‘소장파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경기도정에서 헌정사상 최초로 ‘연정(聯政)’을 실험 중이다. 연립정부의 줄임말인 연정은 둘 이상의 정당이 연합해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 지사는 “청년실업 문제, 저출산 문제, 저성장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은 전통적인 통치와 행정 방식으로 풀기 어렵다”면서 “상호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상대방과 다름을 인정하는 연정은 갈등을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대를 적이 아닌 파트너로 인정하는 협치가 확산되면 우리 사회가 바르고 건강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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