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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사설] 4차산업혁명과 정부가 할 일

자유·창의 가로막는 정부 산업생태계 장악

한국사회 혁신 능력에 회의적 시각 늘어나

불투명성과 불연속적 도약이 특징인 시대

개인·기업 각개약진 허용하는 관용 풍토를

1450년은 세종대왕이 승하하고 문종이 조선 왕위를 승계한 해다. 이 1450년대에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해 성경을 인쇄한다. 고려에서 ‘직지심체요절’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은 1377년. 금속활자 인쇄에 관한 한 우리가 독일보다 70여년이나 앞섰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인쇄문화의 빅뱅을 초래, 유럽 근대화에 핵심적으로 기여하면서 서구 역사의 물길을 바꿔버렸다. 그렇다면 무엇이 조선과 독일의 운명을 바꾼 것일까.

해답의 일부는 중세유럽의 인쇄공들이 여섯 가지 관련 기술을 결합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종이·활자·야금술·압착기·잉크·문자가 그 주인공이다. 물론 조선도 이들 모두를 가지고 있었다. 그뿐 아니다.

조선왕조의 예조 산하에는 교서관이 있었다. 도서 인쇄 및 반포가 주업무다. 교서관에는 잡직 벼슬로 수장제원 44명, 장책제원 20명, 사준·사감 각 1명, 공조 4명, 공작 2명이 배치돼 있었다. 교서관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출판사로 활자를 제작하는 주자소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만든 세계 최초 금속활자는 세상을 바꾸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여섯 가지 기술 외에 또 다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국가가 산업의 생태계를 독점했다는 사실이 중세유럽과 달랐다. 그때 만일 원시적이나마 자유경쟁 시장이 존재했다면 투자자들은 인쇄기술을 동원해 각종 신문·잡지나 대중오락 소설 등 민간 수요가 많은 책들을 대량으로 찍어냈을 것이다. ‘증강현실(AR)’이라는 첨단과학이 포켓몬 고라는 스마트폰 게임을 통해 기술발전을 꾀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21세기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조선왕조와 같은 함정에 빠진 분야가 하나둘이 아니다. ‘선도전략 고사하고 미중(美中) 뒤쫓기 바쁜 한국 전기차’가 7월26일자 서울경제신문 사설 제목이지만 전기자동차는커녕 전기자전거마저 정부 규제에 막힌 채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처지다.

국내에서 전기자전거는 원동기로 분류된다. 원동기라 자전거도로를 달릴 수 없다. 자동차도로에서만 주행이 가능하다. 게다가 전기자전거를 타려면 16세 이상에게만 허용된 원동기 면허가 있어야 한다. 면허가 있어도 최고속도는 시속 25∼30㎞이다. 자동차도로에서 시속 25㎞로 달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규제가 산업을 망치는 게 전기자전거뿐일까. 지금은 웹툰이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한류의 몫을 담당한다지만 1990년대만 해도 만화는 마약과 함께 사회 6대 악이었다. 만화는 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끝내 살아남았으나 한때 세계적 경쟁력을 과시했던 온라인게임이나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끝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재벌을 규제해야 한다며 은산(銀産) 분리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사이 중국은 핀테크에서 한국을 저만치 따돌려버렸다. 중국에서는 지금 길거리 음식도 스마트폰 결제가 일상일 정도다.

한국 정부는 지나칠 만큼 기존 기업들을 보호하려 드는 반면 파괴적인 혁신과 시장의 새로운 흐름에 관해서는 무엇이든 가로막으려 한다. ‘모든 새로운 것은 불법’이라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이 퇴행적인 규제 관행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문을 걸어잠그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은 1784년 영국에서 시작된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 1870년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2차 산업혁명, 1969년 인터넷이 이끈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 시스템이 주도한 3차 산업혁명에 이은 것으로 빅데이터·인공지능·로봇기술·생명과학 등이 주도하는 시대를 뜻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과 불연속적 도약을 특징으로 한다. 과거에 부모들은 자식이 무슨 직업을 가질지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거나 산업의 정글에서 살아남는 생존방식을 귀띔할 수 있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바탕부터 다르다.

오늘날 20대 젊은이들 가운데서도 자신이 30대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부모가 자식들의 삶은 둘째 치고 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보살피지도 예측하지도 못하는 시대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확실성을 보장하는 방법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다룰 수 있는 법을 가르쳐야 하며 심지어 그 방법마저 스스로 찾아내야 할 판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가 산업생태계를 장악하려 든다면 나라의 경제 흐름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요즘 한국 사회의 혁신능력에 의문을 표시하는 외국 미래학자나 국제경제기구들이 많아지고 있다. 국회의 넘치는 경제민주화 법제들, 오리무중인 행정규제, 관료가 허가하지 않고는 혁신이 어려운 사회구조, 한술 더 떠 혁신을 반기지 않는 정치권, 언론의 인기영합적 반기업정서 등. 우리 산업생태계를 숨 막히게 하는 요인은 하나둘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가 간섭할수록 경제적 자유와 민간의 창의는 질식하게 마련이다. 정부가 해야 할 것은 과거와 같은 산업정책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을 앞장서 끌고 나갈 인재 육성과 그를 위한 교육의 기회를 전 국민에게 제공하는 일이다. 그리고 개인과 기업들의 ‘각개약진’을 허용하는 관용적 사회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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