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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선의 우리 술의 멋과 맛] (11)천사의 몫

하얀 눈, 달콤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냇킹콜(Nat King Cole)의 감미로운 재즈 선율, 오랜만의 모임들…, 연말은 설레고 행복한 일이 많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치르고 수시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과 가족들, 수많은 취업재수생들, 비행 청소년이라 불리며 차가운 밤공기를 흡입하고 다닐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안쓰럽고 마음이 짠해진다.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천혜의 환경 속에 있는 블레어(Balblair) 증류소 모습. 위스키는 자연이 만들어 준 ‘신의 물방울’이 맞는 것 같다. /출처=네이버영화





#천사의 위스키 ‘앤젤스 셰어’

2년 전 개봉한 영화 가운데 영국 켄 로치 감독의 ‘앤젤스 셰어(Angel‘s share: 천사의 몫)’라는 영화가 있다. ‘앤젤스 셰어’란 오크통에서 위스키를 숙성하는 중에 매년 2% 가량 술이 증발하는데 이를 두고 천사들에게 나누어주는 몫이라고 부른데서 연유하는 말이다. 스코틀랜드 싱글몰트위스키(Single malt whisky) 증류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는 죽기 전에 가보야 할 곳이라고 말할 정도로 풍광이 뛰어난 스코틀랜드 북부(Highland)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발블레어(Balblair) 증류소가 나온다. 특히, 글렌고인(Glengoyne) 증류소의 구리로 만든 반짝이는 단식(Pot) 증류기가 이 증류소의 관록과 위스키의 맛을 가히 짐작케 해준다.

스카치 싱글 몰트 위스키는 향도 향이지만 우선 목 넘김이 부드럽고 진중하다. 사실 맛이 진하고 중후하기는 아이리쉬 위스키가 그 원형이지만, 위스키 말고 브랜디(Brandy) 중에 꼬냑(Cognac)에서도 그 특징이 잘 나타난다. 이와는 달리 같은 브랜디이면서도 알마냑(Almagnac)이 프랑스의 칼바도스(Calvados)나 미국의 애플잭(Apple Jack), 독일의 커쉬바써(Kirschwasser)와 같이 부드러운 목 넘김 보다 강한 향으로 사로잡는 주된 요인은 1차적으로 단식(Pot) 또는 연속식(Coffey)과 같은 증류 방식이나 횟수와 관계가 깊다. 증류주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교과서와 같은 이야기지만, 단순하게 말하면 한 번 증류한 술은 향이, 두 번 증류한 술은 부드러움이 더 지배한다.

하이랜드 딘스톤(Deanston) 증류소의 블라인드 테스팅 이벤트 모습. 영화에서는 크래건모어(Cragganmore)나 글렌퍼클라스(Glenfarclas) 같은 스페이사이드(Spey side) 싱글 몰트가 나온다. /출처=네이버영화



#‘한국식 증류기’ 고집하는 장인 있어 뿌듯

우리 술은 곡식, 누룩, 물로 빚은 발효주를 맑게 가라앉혀 ‘소줏고리’라고 불리는 증류기에서 소주를 내렸다. 과거에는 옹기로 만든 소줏고리를 이용했지만, 요즘은 스테인레스나 동(銅)으로 만든 증류기를 더 많이 쓴다. 향수를 느끼기에는 옹기로 만든 소줏고리가 더 그럴듯하겠지만 실상은 동으로 만든 증류기가 맛이 훨씬 더 뛰어나다.

그런데 우리나라 소주를 내리면서 이 동증류기 대부분을 포루투칼이나 독일 등 외국에서 수입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 주류업체에서 만든 주정에 물을 탄 값싼 희석식 소주가 주종을 이루다보니 정통 증류식 소주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아 소위 말하는 경제성이 없다는데서 나타나는 실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눈앞에 떨어지는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 기술로 증류기를 만들고 있는 기능인들이 생겨나고 있어 가슴이 울컥해질 때가 있다.



해리(왼쪽)가 스프링뱅크(Springbank) 32년산을 꺼내 사고뭉치 로비의 아들 출산을 축하해주고 있다. 로비는 이때 위스키를 처음 마셔본다. 혀을 감는 독특한 감칠맛과 이탄(peat)향이 독하지 않은데도 로비는 “fxxx”를 연발하며, 콜라를 섞어 마셔도 되냐고 한다. /출처=네이버영화



#우리 술, 일제침탈 없었으면 ‘마오타이’ 능가

1700년대 말 또는 1800년 대 초에 생겨나기 시작한 스코틀랜드의 증류소들 중에는 아무리 그 유수함을 자랑한다고 할지라도 역사성으로 볼 때, 고려시대 이전으로 올라가는 우리의 증류주나 포도주 역사를 따라오지는 못한다. 또한 우리 술이 일제침탈로 단절되지만 않았더라면 중국의 마오타이나 오키나와의 아와모리를 치켜세울 일도 없었다. 올해 벼 수매가 안 되어 트럭에 가득 쌀을 싣고 농협 앞에 밤새워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농민들을 볼 때, 일본 사케나 마시면서 일본쌀 소비를 해줄 일이 아니다. 또한 술이 아무리 기호품이고 연말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 그럴 수도 있다지만, 위스키나 브랜디가 뭔지 제대로 느끼지도 못한 채 보리차처럼 들이키는 천박한 술 문화도 사라졌으면 한다.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동부산업. 이진구 사장이 가족과 함께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동증류기를 우직하게 만들고 있는 곳이다.



#설렘과 행복 넘치는 연말 되기를

가장 감동적인 메시지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얼굴에 그어진 칼자국만큼이나 범죄로 얼룩져 사회 밑바닥 2%라고 할 만한 주인공 로비는 그저 비싼 가격과 명성이 주는 아우라에 속아 가짜 위스키인지 구별하지도 못하는 인간 군상을 통쾌하게 따돌리고 희귀한 몰트 밀(Malt Mill) 위스키를 빼돌린다. 주인공은 아랍 왕자나 살 수 있을만한 가격의 이 위스키를 새로 얻은 직장으로 출발하기 직전, 평소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며 숨어있던 재능을 끌어내준 멘토(mentor) 해리에게 주고 떠난다. 진짜 최고급 스카치 위스키를 마실 자격을 갖춘 사람은 최상위 부유층 2%가 아니다. 그 사람은 바로 천사가 가져가는 몫 2% 외에 불우한 환경에 처한 이웃과 일상에서 따뜻한 나눔 2%를 실천해온 사람들일 것이다. /이화선 사단법인 우리술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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