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과 한화그룹이 양사가 참여한 6,000억원대 미국 기업 인수전이 치열한 경쟁 속에 승부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애를 태우고 있다. 해당 기업은 신성장 동력으로 평가받는 차량용 첨단 소재를 만들고 있고 세계 완성차 기업을 두루 고객사로 두고 있어 한화와 LG 모두 인수전에 절실히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독일의 바스프, 일본 미쓰비시 같은 세계적 화학기업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어 국내 대기업의 인수가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8일 화학업계에 따르면 당초 지난달까지로 예정됐던 미국 콘티넨털스트럭처럴플라스틱(CSP)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작업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아 적어도 이달 중순까지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수전에 참여한 국내 기업의 관계자는 “미국에서 통지가 오지 않아 실무자들이 하염없이 기다리는 처지”라면서 “그만큼 이번 인수전 열기가 뜨겁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CSP는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자동차소재 기업이다. 제너럴모터스(GM)·포드·크라이슬러를 비롯한 주요 완성차에 탄소섬유 등 차량 경량화에 필수적인 첨단소재를 공급한다.
자동차소재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는 국내 기업으로서는 매력적인 인수 대상이다. 이미 지난 6월 한화첨단소재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했고 LG화학(051910)과 LG하우시스도 함께 인수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인수가는 6억달러(약 6,654억원)를 넘는다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업계에서는 국내외 유수의 화학기업이 CSP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인수 열기가 뜨겁다고 본다. 인수전의 승부가 쉽게 가려지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LG와 한화뿐만 아니라 바스프·미쓰비시도 CSP 인수전 참여를 저울질하는 상황이다. CSP는 매년 6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3,000명이 넘는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은 6,000억원이 넘는 인수가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CSP 인수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한화는 2007년 미국 자동차부품사 아즈델을 600억원에 인수했으며 지난해 3월에도 독일 하이코스틱스를 150억원에 사들이는 등 최근 자동차소재 사업에 적극 공들이고 있다. LG는 그룹 차원에서 자동차 부품·소재를 미래 성장엔진으로 키우고 있다. LG는 CSP 외에 독일 소재 기업인 호른슈크 인수까지 추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화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태양광에 이어 경량화 소재를 신성장 동력으로 지목하면서 그룹 차원에서 이번 인수전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인수합병(M&A)에서 좋은 성적을 낸 임원들이 달라붙어 CSP 인수 실무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한화 고위경영진은 이번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다 해도 자동차 소재 관련 M&A에 대한 시도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고 전했다. 한화첨단소재는 지난해부터 경량화 소재 연구개발(R&D)에 주력하고 있고 이미 30년 이상 경량화 소재 사업을 벌인 경험이 있어 CSP와 시너지가 클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국내 대기업이 CSP를 차지할 경우 그간 대규모 M&A를 통한 사업재편에 소극적이었던 한국 기업들에도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자율 구조조정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석유화학 업계는 역량 있는 해외 기업을 인수해 범용제품 비중을 줄이고 고부가 제품군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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