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이 낭자하고 절단된 사지가 나뒹군다. 붉은 핏물에 숨소리마저 사라지는 ‘이곳’은 잔인한 범죄 현장이 아닌 연극·뮤지컬 무대다. 선명한 피와 실감 나는 시체 모형에 관객들은 간담이 서늘하다 못해 꽁꽁 얼어붙는다.
한창 공연 중인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무대를 피로 물들인다. 1회 공연에 사용되는 분장용 피만 2리터에 달한다. 누명으로 모든 것을 잃고 복수의 화신이 된 이발사 스위니토드. 그가 면도칼을 놀릴 때마다 흰 천을 목에 감은 손님은 입에서 피를 뿜어낸다. 이 장면을 위해 손님 배역을 맡은 배우는 입에 분장용 피를 머금고 무대에 등장한다. 이발 의자에 앉아 묵묵히 표정으로 연기를 펼치던 이들은 결정적인 순간 ‘입속 비밀’을 토해내며 객석에 충격을 안긴다. 무대용 피는 통상 커피 가루와 설탕·식용 색소로 만드는데, 설탕의 농도를 조절해 피의 점도를 표현하는 게 관건이다.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엔 시체가 등장한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창조물 ‘괴물’이 시체를 이어붙여 만든 것이라는 설정에 걸맞게 잘린 머리와 다리 소품이 나온다. 극 중 괴물 역을 맡은 배우가 1인 2역 하는 ‘앙리 뒤프레’ 캐릭터는 빅터를 대신해 참수당하는데, 잘린 목은 해당 배역 배우들의 얼굴의 본을 떠 제작했다. 다리 접합 수술 장면에 사용되는 잘린 다리는 그 정교함에 소름이 돋는다. 실제 모양과 유사하게 만들기 위해 실리콘 더미를 활용해 잘린 단면에 뼈와 힘줄, 피에 물들어 흐물흐물해진 살점까지 표현했다. 병으로 죽은 뒤 화장된 빅터 엄마의 시체 역시 더미의 표면을 불로 그을려 화상을 입은 듯한 질감을 만들어냈다.
뱀파이어 소녀와 인간 소년의 사랑을 그린 연극 ‘렛미인’도 극 중 간담 서늘한 장면을 종종 연출한다. 관객이 가장 경악하는 순간은 ‘초대받지 않은 공간’에 들어간 여주인공 일라이가 온몸에서 피를 뿜어내는 장면이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얼굴 전체를 물들이는 이 장면의 비밀은 가발에 있다. 가발 안에 인공 피를 담은 호스를 설치한 뒤 몸 안에 연결된 버튼을 눌러 붉은 액체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온몸으로 발작하며 자연스레 버튼을 찾아 누르는 게 이 장면의 관건이다.
칼 안에 비밀을 넣기도 한다. 렛미인에서 남자 주인공 오스카가 맹세의 의미로 자기 손을 칼로 긋는데, 이때 손에서 피가 흐른다. 특정 부분을 누르면 피가 나오게 설계한 칼이 이 장면의 일등공신이다. 스위니토드도 같은 방식으로 면도칼을 만들어 베인 자리에 자연스럽게 피가 흘러나오는 장면을 연출한다.
알고 봐도 여전히 스릴있는 무대. 안 보이는 곳에서 벌어지는 땀나는 노력과 고민 덕에 관객은 오늘도 오싹한 공연에 빠져든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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